UX Writing, 데이터는 던져 놓을 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저도 이제 연식이 되는 사람이다 보니 부득이 수많은 사람을 겪고 관계를 맺을 기회가 생깁니다.
그중에는 편한 사람도 있고 때론 거북하거나 또는 불쾌한 사람도 있습니다. 불쾌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단 대화 자체가 힘들어요. 보통 오랜만에 상대방을 만나면 그간의 안부 같은 가벼운 인사부터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 나가잖아요?
나 : 어 형 오랜만이야, 점심 먹고 나왔어?
상대방 : 아니
나 : 아 그렇지 시간이 좀 이르지, 마침 나도 안 먹었어 뭐라도 가볍게 먹을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살게
상대방 : 아무거나
이런 식입니다.
대화란 게 보통 양 당사자가 맥락이 이어지는 연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점점 더 많은 이야기로 발전해 나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맥락은 둘째치고 일단 대화를 던지듯이 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굉장히 피곤합니다.
뭐라도 대화를 이어가려고 저 혼자 고민하고 이야기해봐야 툭 던지듯 끊어지는 대답에 힘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애당초 이런 사람은 굳이 시간 내서 만나지는 않습니다만, 이게 신기한 게 상대방이 되려 저를 종종 찾더라고요. 마치 저와의 시간이 자기에겐 즐거웠다는 듯이.
서론이 길었는데, 여기서 저 상대방이 여러분의 서비스고 제가 여러분의 사용자라고 생각해 봅시다. ‘고객 중요한지 몰라? 누가 저렇게 해?’라고 상각 하실지 모르겠는데 은근 그런 경우가 많아요?
예전 글에 (UI 또는 컨텐츠) 설계는 사용자에게 건네는 대화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을 바꿔 볼게요. 여러분은 사용자에게 컨텐츠를 어떻게 제공하고 있나요? 맥락 없이 데이터를 그냥 던져놓지는 않나요?
요즘 시대가 발전하다 보니 학생들의 UX프로젝트를 보면 여러 IOT 기기를 활용한 컨텐츠(가치) 개발을 들고 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 최근엔 비침습 당뇨 체크가 가능한 스마트 워치가 상용화되는 등 기존엔 일상적으로 수집하기 어려웠던 데이터도 쉽게 수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를 활용해 당뇨환자의 식단관리를 고민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문제 인식도 나쁘지 않았어요.
'1인 가구의 증가와 배달 음식/외식 비중이 높아지면서 식단 관리 문제로 인해 젊은 세대의 당뇨 유병율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데스크 리서치로 들고 오는 것들을 봐도 나름 유의미한 데이터가 있고 시장 인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거기에 세부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진행하면서 발견되는 구체적인 형태들도 흥미로웠어요.
혼자 사는 데다 회사 일 하다 보면 외식을 해야 하니 애당초 건강식을 챙겨 먹을 환경도 안 되죠, 게다가 건강식으로 알려진 메뉴 중에도 누구는 먹어도 혈당에 영향이 크지 않은데 누구에겐 또 영향이 있는 등의 편차가 있더라고요. 거기에 같은 메뉴라도 음식점마다 레시피나 재료로 혈당 영향치가 상이하다 보니 당뇨 초기증 상자에겐 더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었고요.
자, 그럼 이제 우리는 여기에 대한 UX대안으로 이렇게 접근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직장인을 위한 혈당관리 서비스 : 음식점별 메뉴에 연동된 데이터로 식사 직후의 혈당 변화 추이를 기록해서 앞으로 더 좋은 음식을 찾아먹을 수 있도록 도와드려요.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데이터로 조금 더 혈당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식단도 발견하고?
꽤 괜찮은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서비스를 고민하다 보면 분명 서비스 일정 영역에는 현재 내 당뇨 상태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이렇게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데이터를 보여주는 건 굉장히 퉁명스러운 친구처럼 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120mg/dL이게 대체 뭘 뜻하는 걸까요? 잘 아는 분도 있겠지만 아직 당뇨를 정식으로 판정받지 않은 초기 의심환자 같은 경우에는 단위 조차도 상당히 낯설 겁니다.
그럼 사용자는 우리 서비스를 켜면서 이렇게 물을 거예요.
사용자 : 내 상태는 지금 어때?
서비스의 답변 : 120mg/dL
위에서 본 말투랑 비슷하죠?
저는 이런 걸 학생들에게 데이터를 던져놓는 거라고 말하곤 합니다. 요즘엔 UX Writing이라 부르면서 친절한 커뮤니케이션을 더 중요시하는 시기인 만큼 이런 던지는 형태는 매우 부적절할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시장엔 사용자와 친구가 되고픈 여러 경쟁자가 있을 텐데 우리만 퉁명스럽다고요. 굳이 사용자가 우리와 친하게 지내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니 최근엔 이렇게 많이들 바뀌어 가고 있어요.
사용자에 질문에 좀 더 친절해졌죠?
상태를 묻는 사용자에 질문에 적어도, "지금 정상 범위로 상태가 좋으니 걱정 마"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데이터 하나만 달랑 던져놓는 것과 달리 이제 데이터 추세도 읽을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오늘 내 하루가 어땠는지, 앞으로는 어떨지도 상상해 볼 여지가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퉁명스러운 대화가 아니게 되죠.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사용자가 궁금해할 만한 것도
더 알려주려 노력하니까요. 저는 여기까지만 와도 대단한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좀 더 욕심내 볼까요?
심술궂은 제 행복론은 '행복은 비교해 볼 때에야 비로소 체감이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뭐 대단한 소리 하는 것처럼 해놓고 알고 보면 굉장히 쫌생이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인간이란 게 원래 그래요. 내가 아무리 행복해도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몰라요. 얼마나 불행한지도요.
그래서 제가 늘 불행하죠....
흠, 저는 그래서 데이터를 설명해 줄 때는 비교 데이터가 있으면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내가 정상이란 걸 알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나와 유사한 집단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를 알게 해 줄 수 있다면?
너 괜찮긴 한데, 너무 많이 먹은거야?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 관리가 필요한 거 같아
이제는 단순히 내가 좋다/나쁘다만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체감할 수 있게도 해줄 겁니다. 물론 통계의 함정은 존재하겠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아웃라이어(Outlier)만 제거해줘도 꽤 쓸만할 거예요.
지금은 데이터만을 기준해서 예를 들었지만 여러분의 서비스 구석구석에는 데이터 컨텐츠를 비롯해서 UI컴포넌트 등 위와 같은 대화 요소들이 많을거예요.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 모든 요소들이 여러분의 사용자에게 어떻게 말을 걸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