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평]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의 기억에 대한 철학 >

by 밀밭여우

줄리언 반스는 1946년생으로 현존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문학 작가다.


<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무척 매료되었던지라

최근 작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역시 기대감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이 책 앞에서 나는 잠시 절망했다.

한마디로 너무 난해하다.

두 책이 분명 같은 주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일단 문장이 너무 복잡하다.

번역가가 다르므로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서일 수도 있고, 원작의 내용 자체가 비비꼬여서 그럴 수도 있다.

번역본을 읽을 때마다 원서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럽다.

(내가 영어 공부에 그만큼 게으르단 증거니까...ㅠ.ㅠ)


책을 읽던 도중 중간에 글자만 보이고 문장이 머리속에 들어 오지를 않아 쉬었다 읽었다를 반복했다.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결국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어려운 숙제를 찜찜하게, 불만족스럽게 겨우 마친 것 같아 사실 기분은 별로다.



<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 >

닐 : 이 소설의 '화자'로 엘리자베스 핀치를 통해 자신이 느꼈던 '기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이야기한다.


엘리자베스 핀치 : 중세사와 여성 사상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집필했고 '역사가 인간의 왜곡된 기억으로 얼마나 편집되어 왔는지를 주장'하는 교수다. 이야기 내내 닐은 그녀를 약자 EF (Elizabeth Finch)로 표현한다.



< 소설의 아웃 라인 >


"적당한 행복에 적당히 만족하라.

인생에서 유일하게 분명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건 불행이다."

(본문 p31)


닐이 문화와 문명을 주제로 강의하는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의 수업을 들었을 때 그녀가 한 말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이기에 항상 무언가를 던져주며 정답은 없으니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라

식이다.

마치 선문답 같다.


닐은 나중에 ’그녀가 감질날 정도로 쉬운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을 들은 사람은 쭉 이어지는 생각의 열차를 타게 되었다‘ (p247) 고 회고한다.


또한 EF의 독특한 사고, 무심한 행동, 하다 못해 담배를 피우는 모습까지도 평범하지 않은 그녀답다고 표현하며 열광한다.


강의의 핵심은 인간의 기억이 불완전으로 왜곡한 역사의 진실 게임 같은 가설로,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모순되었는지를 피력한다.


그 한 예로,

그리스 로마 제국 시대를 배경으로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갈등 속에서 로마의 황제 '율리아누스'가 등장하고

그의 죽음이 기독교의 '배교자'인지 아님 기독교가 번성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 '영웅'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가설과

그 가설을 뒤엎는 가설이 이어져 읽는 내내 피로감을 준다.

율리아누스는 다신교자였으며 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 엄청난 양의 짐승들을 제물로 바쳤던 인물이다.


EF는 역사와 종교에 대한 쓴소리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아 학계와 출판계, 언론계 등으로 부터 배척 당하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강의가 완전히 끝난 이후에도 닐은 개인적으로 EF와 만나 점심을 먹으며 서로의 철학을 논한다.

몇 년동안 이어진 이 정기 모임이후 EF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닐에게 자신의 노트를 유품으로 남긴다.

그걸 통해 닐은 다시금 EF의 족적을 추적하면서 그녀에 대한 글을 써서 그녀의 명예를 회복 시키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닐은 여러가지 조사와 생각 끝에 그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상상과 허구로 점철된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내가 엘리자베스 핀치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은

율리아누스 황제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깨달았으니, 멈출 때가 되었다.

(본문 p290)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본문 p292)



< 소설을 통해 느낀 점 >


과연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이 진실 그 자체인지, 왜곡된 기억의 편집으로 진실이길 바라는 허상인지 모를 일이다.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들 개인의 문제에까지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소설이다.





제 목 :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저 자 : 줄리언 반스

출 판 : 다산책방

발 행 : 202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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