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궁극적으로 무엇으로 사는가 >
헝가리의 대문호라고 알려진 산도르 마라이는 내게 낯선 작가다.
그의 이름도, 작품도 처음 접해본다.
'열정' 이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만 보면 단순한 로맨스 소설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단순하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많이 무겁다.
책 뒷표지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드라마 작가 김수현님의 한줄 소감으로,
<짐짓 평범한 사랑의 도식인 듯하지만, 비범하고 놀라운 소설이다.> 라고 적혀있다.
읽어보니 사실 그랬다.
처음 시작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위한 시나리오를 보는 듯하다.
주인공과 유모의 수수께끼 같은 대화로 앞으로 펼쳐질 뒷 이야기의 서막이 열린다.
"그러니까 그가 돌아왔단 말이지."
그는 방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추고, 큰소리로 말했다.
"사십일 년하고 사십삼일 후에."
사십일 년 사십삼일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그는 갑자기 피곤해 보였다.
(p12)
유모가 말했다.
"옛날 그대로이기를 원하세요?"
"그렇다네."
장군은 대답했다.
"옛날 그대로. 마지막 식사했을 때처럼."
"알겠어요."
그녀는 짧게 말했다.
"흥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약속하지."
장군은 고분고분하게 나지막이 말했다.
(p21~22)
소설의 전체적인 그림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어서
김수현 작가의 표현처럼 평범한 사랑의 도식처럼 보인다.
금수저로 태어난 주인공 헨릭과
흙수저로 살아 온 콘라드와 크리스티나.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통틀어 서로 가장 사랑하고 가장 친밀한 관계였다.
사관학교에서 만난 헨릭과 콘라드는
서로의 다른 가정 환경에도 불구하고
쌍둥이처럼 붙어 다닐 정도의 절친이었고
크리스티나는 콘라드와 음악적 교류로 은밀한 연인 관계이지만
물질적 풍요와 신분 상승을 위해 크리스티나는 헨릭과 결혼한다.
그들은 서로 좋아했기 때문에, 서로의 원죄, 부와 가난을 용서했다.
'다르다는 것'은 콘라드에게 친구의 영혼을 지배하는 힘을 주었다.
이 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힘에는 지배당하는 사람에 대한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경멸이 스며 있다.
예속당하는 자를 인식하고 이해하여 아주 능숙하게 경멸할 때에만 인간의 영혼을 지배할 수 있는 법이다.
p77
사랑에는 질투가 따르기 마련이다.
질투의 대상이 물질일 수도 있고, 영혼일 수도 있고,사람일 수도 있다.
주인공 헨릭이 사십일 년만에 만난 콘라드 앞에서
자신의 전 생애를 독백처럼 쏟아내는 장면은
마치 헝가리안 랩소디처럼 장엄하다.
사십일 년 동안 품고 있었던 질문을 던지면서도 동시에 대답은 들으려하지 않고 다만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떠나고 나는 여기 머무르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남았네.
비겁했는지 맹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했는지 현명했는지 모르지만.
어쨋든 우리 두 사람은 살아남았어.
자네는 우리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우리가 무덤 저편의 그녀에게 할 일을 다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녀는 우리 두 사람보다 훨씬 인간적이었어.
우리 두 사람은 살아 있는데, 그녀는 죽음으로 우리에게 답변했기 때문에 더 인간적일세.
더 오래 사는 사람은 언제나 배반자라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그래서 그녀가 죽었기 때문일세.
자네는 떠났고, 남아 있는 나는 그녀에게 가지 않았지.
그녀의 일부나 다름없었던 우리 두 남자가
여자로서 참아낼 수 있는 이상으로 비열하고 오만하게 침묵했기 때문에 그녀가 죽었네.
우리 두 사람은 그녀에게서 달아났으며,
살아남는 것으로 그녀를 배반했지.
이것은 진실이네.“
p271
이 소설은 사랑과 질투를 매개로
인간의 본질적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사람은 궁극적으로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저자 : 산도르 마라이 (헝가리, 1900~1989)
제목 : 열정 (총 287쪽)
번역 : 김인순
출판 : 솔 출판사
발행 : 201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