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가장 싫습니까? >
도서관에 갔다가 130여 쪽의 짧은 소설 [탕비실]을 집어든건 순전히 얇은 두께와
"누가 가장 싫습니까?" 라는 도발적인 도입부 문장 때문이었다.
머리 복잡할 때 가볍게 읽을거리로 딱 어울리겠다는 생각과 함께.
TV에서 방영 할 리얼리티쇼를 제작하기 위해 일반 직장인 8명을 캐스팅했는데 그 방법은 이랬다.
출연자의 자발적 지원이 아니라 직장 내에서 빌런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을 몰래 추천 받아 직접 출연 제의를 한 것이다.
(빌런 : villain 악당을 뜻하는 영어 단어)
헐~ 직장내 빌런이라니…그럼 직장 동료중 누군가가 공공의 적이란 말인가?
하룻밤 시간을 주고 출연할지 말지를 결정하라고 하자 결국 남은 사람은 5명.
그 중 한 명은 방송용 캐릭터로 만들어진 인물이며 게임을 위한 술래 역할이다.
평소 각자 업무를 보는 사무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내부에 작은 침실과 욕실을 갖춘 개인 방이 배정되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탕비실을 평소처럼 들락거릴 수 있도록 세팅해 놓은 촬영장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술래가 누구인지를 알아맞히는 간단한 게임이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일주일만에 누가 연기를 하는지,누가 진짜 빌런인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규칙을 깨면 원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힌트가 주어진다.
그런데 대체 규칙은 또 뭐람?
규칙은 스스로 찾아내야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깨야하는지 각자의 아이디어에 달려있다.
출연진 각자가 회사 동료들로부터 빌런 취급을 받았다는 것에 당혹스럽고 의아했지만,
자신이 왜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지 도통 짐작이 안되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게다가 딱 일주일동안 게임을 통해 술래를 잡으면 상금 또한 쏠쏠하기에 출연을 결심한다.
게임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이 닉네임으로 불리운다.
얼음 : 냉동실 얼음칸에 음료를 넣어 음료 얼음을 만드는 인물.
텀블러 :환경 운동을 외치며 수십개의 텀블러를 탕비실에 늘어놓는 인물.
혼잣말 : 남 의식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는 인물.
케이크 : 탕비실 냉장고에 커다란 케이크 박스를 넣어 놓는 인물.
커피믹스 : 탕비실 커피믹스를 자신의 주머니에 꽉꽉 채워 넣는 인물.
이정도면 민폐중의 민폐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있을법한 인물들 아닌가.
소설은 얼음의 관점으로 쓰여졌다.
얼음은 상금에도 관심이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싫어하는지, 그 이유가 뭔지 몹시 궁금했다.
나는 텀블러를 흥미롭게 관찰했다. 자칭 환경 운동가.
자신만만하다 못해 거만한 말투. 그는 아침부터 일관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사람의 특성이 입체적이지 않고 일직선상에 보기 좋게 놓여 있을수록
만들어진 캐릭터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p54)
나는 그날 그녀가 싫어졌다. 그러나 술래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그녀에 대해 더 알아내야만 했다.
나는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쉽지만 정말로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렵다.
나는 이 게임이 단순히 탕비실에서 열리는 진상 콘테스트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p77)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모든 일들을 관찰자 시점에서 다시 보는 것은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상황의 정중앙에 있는 사람일수록 전체를 가늠하기 힘들다더니,
이런 식으로 방송이 편집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p127)
나는 그동안 게임이나 리얼리티쇼 같은 것에 별 흥미를 못느꼈다.
그나마 넷플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오징어게임을 본게 다 였고, 요즘 인기있다는 TV리얼리티쇼는 단 한 편도 본 것이 없다.
특히 리얼리티쇼를 안보는 이유는 왠지 사기를 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 생각을 그대로 잘 보여주는 문장이 있어 여기 옮겨본다.
그간 봐왔던 수많은 방송들 속에서 나는 과연 보려고 마음먹은 것을 본 건지,
누군가 보여주려고 마음먹은 것을 덥석 건네받았을 뿐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p130)
방송이란게 시청자의 입장보다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로 편집되는 것이기에
리얼리티쇼에 리얼리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리얼리티쇼를 위해 출연자들이 촬영 당하는 소설 속 게임은 오히려 리얼리티했다.
출연자 개개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은근히 상대의 속마음을 떠보는 대화를 시도한다거나 힌트를 얻기 위해 출연자들이 벌이는 천태만상의
규칙 위반은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잘 드러낸다.
더구나 타인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누군가에겐 지나친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안겨준다.
주는 사람 마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일치하면 사랑이지만, 불일치하면 스토킹이 되는 이치라고나 할까?
적당한 긴장감과 호기심으로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게 만드는 소설이다.
별 기대감 없이 펼쳐들었는데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달렸다.
게임의 승자가 누구인지,
술래는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강추!!^^*
제 목 : 탕비실
장 르 : 소설
저 자 : 이미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저자다.)
출 판 : 한끼 (주)오팬하우스
발 행 : 2024. 0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