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거짓말, 진실 사이의 삼각형>
책 제목처럼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은 박완서 님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10여 년 전 읽었을 때의 느낌을 지금은 기억할 수 없지만 이번에 다시 읽을 때는 오래전에 끝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했습니다.
어쩜 책 표지까지 옛스러운지...아날로그 감성이 뚝~뚝~...ㅎㅎ~
< 주요 등장 인물 >
1. 아무도 길들이지 않은 것처럼 자유롭게 말하고, 남이 뭐라든 자기 의지대로 사는 여자 : 현금
2. 그런 그녀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년에 이른 지금까지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에 품고 살아온 우리 시대의 엄친아, 의사 : 영빈
3. 딱히 끌리지도 않았지만 현실에 떠밀리듯 결혼 한, 교사이자 현모양처의 표상인 영빈의 아내 : 수경
4.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아버지가 불명예로 돌아가셔서 두 오빠의 짐이 된 늦둥이 여동생 : 영묘
5.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가로 성공한 뒤 모교에 10억을 기부함으로써 돈으로 돈의 권력에 맞선 영빈의 형 : 영준
6. 세상 모든 것을 심지어 가족까지도 돈으로 쥐락펴락 조종할 수 있다고 믿으며 돈의 권력에 취해 사는 졸부, 영묘의 시아버지 : 송회장
< 시놉시스 >
시어머니 잘 모시고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도 야무지게 하면서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현모양처 수경은
조용한 배경 음악처럼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엄마들이 부러워할 엄친아, 의사 영빈과 야생마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현금과의 불륜도 그렇고
돈의 권력을 가족에게까지 휘두르는 송회장의 느끼한 거들먹거림,
시댁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영묘,
장남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려고 미국으로 이민 간 뒤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막판에 혜성처럼 등장해 가족간의 모든 갈등을 해결해 주는 영준.
등장인물들의 특성만 봐도 사람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렇다고 막장 드라마는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웃집 이야기일 수도 있고, 바로 내 집 얘기일 수도 있는,
그야말로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책 제목의 [아주 오래된 농담]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농담의 내용은 영빈과 현금의 대화로 대략 이렇습니다.
"조기 발견 못한 암으로 시한부인 환자에게 보호자는 거의가 다 환자에게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해.
다들 왜 그렇게 속이려 드는지 모르겠어.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에 속고, 시대에 속고, 이상에 속고... 일생 속아 산 것도 분한데 죽을 때까지 기만을 당해야 옳겠냐? 이런 거짓말을 강요당할 때처럼 의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낀 적도 없다니까."
"얘는, 그게 어떻게 거짓말이냐, 농담이지."
"농담?"
"그래 농담이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거, 그거 농담 아니니? 의사라고 농담하지 말란 법 있냐? 특히 너처럼 꽉 막힌 애는 농담 좀 할 줄 알아야 돼."
"목숨이 달린 문제야.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남은 생을 보람 있게 뜻있게 살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생긴 의욕 때문에 생이 훨씬 더 연장될 수도 있구, 이건 무엇보다도 삶의 질의 문제야."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너.
우리 친척 할머니 한 분은 유방암 수술하고 완치된 줄 알았는데 간암이 된 거야. 이번엔 수술도 안 되고 앞으로 1년 살면 오래 사는 거란 진단을 받았대.
벌써 20년도 더 된 얘기야. 환자가 눈치채고 세상을 비관하여 매일 울고 짜는데 1년도 못 채우고 지레 죽게 생겼더래.
근데 그때 여남은 살짜리 그 집 맏손자가
“할머니 지금 돌아가시면 약속이 틀리잖아요. 나 장가가는 거 볼 때까지 살 거라고 해놓고선...” 하니깐 그 할머니가 당장 파안대소를 하면서
“아니지 이 녀석아, 내가 언제 너 장가가는 것만 보고 죽겠다고 했냐? 첫아들 낳는 것까지 봐야지 죽는다고 했지”라고 맞받아서 집안 식구들을 다 웃겼다는 거 아냐.
근데 정말 그렇게 된 거야. 그러고도 20년을 더 살았으니까. 그때 할머니나 손자가 믿고 그런 소리를 했겠어?
안 믿으면서 재미있으라고 해본 소리지. 그게 뜻하지 않게 극한상황을 완화시켜 준 거지."
"그럼 암은? 오진이었나?"
"알 게 뭐야. 끼고 살았는지, 이겨냈는지. 팔십을 넘어 살고 노망까지 부려서 식구들을 애먹이다 돌아가셨으면 그만이지 그까짓 게 뭐가 궁금해."
p150~152 (영빈과 현금의 대화)
이게 남의 이야기일 땐 얼핏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일로 닥친 영묘에겐 거짓말이 농담이 될 수 없습니다.
단 며칠을 살아도 살맛을 온전하게 느끼며 살아야 할 게 아닌가. 사는가 싶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길 가망이 없다고 투지를 제거시킨다면 미리 죽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암이 어때서?
암 아니라도 죽음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없다. 결국은 죽을 줄 아는 게 생을 아름답고 살맛 나게 한다. 안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것이다.
생전 안 죽을 것처럼 여기고 무진장 욕심을 부리는 것도 결국은 속아 사는 것이다.
투여되는 영양제나 생약이 몸을 보할지는 몰라도 환자 대신 병과 싸워줄 수는 없다.
싸울 수 있는 건 환자 자신뿐이다.
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싸울게 아닌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 분하고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고 해도 그 또한 삶의 맛이다.
그게 가장 진미일 수도 있는 것을.
공포. 분노. 절망이면 왜 안되나?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절망이 없기 때문이다.
p195 (영묘의 생각)
영묘는 남편 경호가 말기암 판정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알리고 환자 스스로 남은 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를 바랐지만 마음 약한 자식이 지레 겁을 먹고 오히려 삶의 의지를 잃을까 봐 비밀에 부치라는 시아버지 송회장의 겁박에 분노합니다.
단순히 자식의 병약함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재벌가의 체면과 혹시라도 재산을 빼돌려 영묘와 경호의 자식 앞날을 대비할까 봐, 그래서 송회장 자신이 그들을 맘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될까 봐 사기를 치는 것 같아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배신당하는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떨까요?
지금 바로 내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암에 걸렸다면 나는 그 사실을 본인에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나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가족들만 알고 내게는 비밀로 했다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어떤 기분이 들까요?
30여 년 전, 내가 둘째 아이를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을 때
친정엄마의 권유로 나한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남편은 내 몸에 불임시술을 하게 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내 건강을 위해 그런 결정을 했다지만 내 몸의 주인인 나한테 의견조차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 존재 자체가 완전히 무시당한 것 같았던 그때의 자괴감은 지금껏 잊히지 않습니다.
하물며 죽을병에 걸린 걸 알려주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요?
이 책을 통해 농담과 거짓말, 진실 사이의 삼각형을 잘 파헤쳐보시길 바랍니다.
도 서 : 아주 오래된 농담
저 자 : 박완서
출 판 : 세계사
발 행 : 2012. 0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