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물처럼 살고 싶습니다 >
"도를 아십니까?"
학창 시절 길거리에서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느닷없이 던졌던 질문이다.
그땐 '도'가 뭔지도 몰랐지만 낯선 이와 말 섞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도(道)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나온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그가 물었던 '도'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도'가 같은 '도'인지는 사실 아직도 모르지만
-다를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도'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했던 경험인지라 도덕경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배운 건 대부분 서양 철학이었기에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부모님의 말씀은 그저 공자왈, 맹자왈로 구태의연해 보였다.
그런데 삶의 희로애락을 겪고 반 백 년을 넘어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둥둥 떠다녔던 마음을 이제는 가라앉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동양 고전에 슬쩍 눈길이 갔다.
TV 강의로든 책으로든 최근 들어 동양 사상에 대한 정보가 많아진 것도 내 관심을 끄는데 한몫했다.
[노자의 마음공부]는
스무 살에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한 뒤 출판사를 경영하다 문을 닫고 현재는 글쓰기를 가르치며
대학 강의와 방송 진행 등을 하는 문학비평가 장석주 님이 엮은 책이다.
읽기 전에는 노자의 도덕경을 알기 쉽게 해석해 주는 책인가 싶어
최진석 님의 [나 홀로 읽는 도덕경]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볼 요량이었는데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노자의 <<도덕경>>에 빗대어 저자가 걸어온 삶의 여정과 사색을 기록한 에세이다.
시인답게 일상을 시로 표현한 문장들도 곁들여 있다.
강해지려고도, 이기려고도 하지 마라.
강건한 것은 꺾이고, 애써 이기려 들면 지는 법이다.
재화를 욕심껏 움켜쥐면 기어코 흩어지고, 쇠를 두드려 날카롭게 벼리면 오래 보존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천하에 물같이 약하고 부드러운 덕성을 이길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본문 p115)
물은 도와 같다는 도덕경의 핵심을 쉽게 풀어 쓴 내용으로
저자는 이 구절을 외우고 마음에 새기며 살고 싶다한다.
우리가 흔히 "져주는 것이 이기는거야."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것이
바로 이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약지승강(弱之勝强)에서 비롯되었나보다.
그래서일까.
안성의 한적한 금광호숫가 근처에서 은둔자처럼 사는 저자의 여유와 넉넉함이
글에서 그대로 배어나온다.
동심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무지개다.
아이들은 제 마음의 무지개를 따라가지만 어른들은 제 욕망을 따라 간다.
<중 략>
예술가들은 동심을 훔치는 예외적인 존재들이다.
모차르트가 주는 음악의 동심과 이어져 있다.
이중섭과 장욱진의 그림을 볼 때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노스탤지어를 불러오는 까닭이다.(본문 p192~193)
<<도덕경>>의 함덕지후(含德之厚): 덕을 두텁게 품은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는 뜻을
저자는 동심을 통해 도의 덕목이 말에 그치지 않고 몸으로 실행하기를 강조한다.
이는 곧, 무위자연(無爲自然):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으로
도(道)가 스스로 이루는 이상적 경지’를 의미한다.
인간이 자연의 도를 본받아 무위(無爲)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청춘은 좀 달라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노자는 선악, 미추, 유무, 고저, 장단, 전후 등이 상호 규정에 따라 생겨나는 개념임을 밝힌다.
어느 한쪽은 다른 한쪽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본문 p158)
저자가 <<도덕경>>의 천하개미지위미 사오이(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천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분별하는 까닭은 바로 추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듯이, 넘실대는 파도에 맞서 서핑하듯 자연을 거스르는 청춘을 지나야만 비로소 고요한 중년의 시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자로 된 난해한 문장 앞에 막막했던 나는
저자의 시선으로 쉽게 풀어 써준 이 책 덕분에 어렵지 않게 도덕경을 이해할 수 있어 참 감사하다.
저자는 도덕경을 늘 곁에 두고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 닿는 페이지를 펼쳐 읽으며 하루 종일 읊조리며 뜻을 헤아리다 보면 마음이 어느덧 평온해짐을 느낀다고 한다.
노자의 마음 공부 역시 한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곁에 두고 스미듯 느끼며 찬찬히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인생의 항로를 재정비해야 할 나이, 마흔에 접어들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도 서 : 노자의 마음 공부
저 자 : 장 석 주
출 판 : 윌마
발 행 : 202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