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가 차백성의 이베리아 반도 기행

<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

by 밀밭여우

지난봄, 3월에 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자유여행했었다.

3월이 우기였는지 계속 비가 내렸고 대중교통과 도보로 다니느라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겨우 3주 동안 13개의 도시를 방문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여기 60여 일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 20여 개 도시를 자전거로 여행한 이가 있다.

차백성 작가님.

그는 1976년 대우건설에 입사해 북아프리카 건설 현장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50대 초반에 퇴임 후 현재까지 자전거 여행가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국내 1세대 라이더인 그가 20여 년간 세계 여행을 하며 쓴 기행문은 수많은 라이더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2008년에 [아메리카 로드]를 시작으로 [재팬 로드], [유럽 로드], [자전거 백야기행] 등의 책을 썼고

이번에 [이베리아 반도 기행]은 자전거 여행과 인문학을 접목시킨 그의 다섯 번째 역작이다.


<차백성 작가님의 자전거 여행지에 내 여행 루트를 그어봤다.>


자동차로 다녀도 먼 거리를 자전거라니…나로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걷는 것과 자전거를 타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힘들까 잠시 생각해 봤다.

속도와 소요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듯하다.

그러니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자전거 여행자도 도보 여행자와 똑같이 순례 증명서를 주는 게 아닐까.

나처럼 고속 열차 타고 산티아고에 간 사람에겐 절대 순례 증명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방문했던 이베리아 반도 내의 도시들 대부분이 나의 여행지와 겹쳐서

책을 읽는 동안 생생한 기억들이 떠올라 다시 한번 그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이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던 반면,

차백성 저자의 기행문은 유럽의 역사와 종교, 문화, 예술, 철학이 담긴 인문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수박의 달콤한 속살을 먹은 듯

내가 여행했던 당시보다 더 풍부한 감성으로 여행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나는 눈으로만 보았고

차백성님은 마음으로 본 것이다.


스페인은 약 800여 년 동안 아랍의 이슬람 문화권에 지배를 받았다.

타 종교, 타 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무슬림에 의해 유대인들도 많이 유입되었다.

가톨릭과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했던 덕분에

스페인의 성당과 성(Castle)의 건축 양식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더 화려하고 독특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이다.

스페인이 1492년에 아랍의 왕을 쫓아내고 알함브라 궁전을 차지했지만

이사벨 여왕의 무슬림 박해로 수백 년 동안 방치하고 잊혀졌다가

미국의 근대 단편 소설가 '워싱턴 어빙'이 쓴 에세이 [알함브라 궁전 이야기]로 인해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그제서야 스페인 정부는 이를 국가 기념물로 지정했으며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이 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정작 여행지에서는 몰랐었다.

가이드 없는 자유여행이었기에 사전에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봤지만

그저 호텔과 교통편, 현지 맛집 등만 검색하고 나머지는 그냥 가보면 뭔가 보이겠지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참 무지몽매한 반쪽짜리 여행이었다.

스토리텔링이 없는 건축물은 영혼없는 인형과도 같다.

역사적 배경과 그 시대 주요 인물들의 성격, 문화, 동서양의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등

그 나라 건축물 안에 담긴 히스토리를 알고 보면 보다 많은 것들을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자전거를 애마 ‘로시난테’라 부른다.

스페인의 국민 작가 세르반데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그 말 이름이다.



자전거 세계여행,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하고 하찮은 짓일지언정 나에게는 인생을 걸 만큼 큰일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치욕’을 감내하는 것이 진정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용기는 두려움에 대한 극복이다.

전환기에는 ‘왕따’ 당할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상궤(常軌)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유년 시절에 꾸었던 꿈을 실현하는 것이 ‘긴 인생길에서 남보다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용기였다.

용기의 원천은 젊은 날 읽었던 『돈키호테』에서 얻은 영감이었다.

돈키호테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열정과 신념을 다해 무엇을 시도하든 자신을 내던졌다.

내가 옳다고 생각되면 어떤 위험도 감수하며 도전했다.

깨지고 얻어터져 만신창이가 될지언정,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싸워 이길 수 없는 적들과 싸움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으려고 달려갔다.” (p87)



차백성 작가님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행, 곧 떠남의 궁극적 형태는 죽음이다.

생명은 우주를 호흡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한계를 숙명으로 갖는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여행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죽음과 맥이 닿아 있다.

길고 힘든 여행을 다녀오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주어진 현실을 긍정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뿐 아니라 모든 존재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

떠나는 경험을 통해 현실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결국 잘 죽는다는 것은 언젠가 나 역시 영원의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며, 곧 현실을 잘 사는 길이 된다.

그래서 여행은 죽음의 연습이되, 음울한 예습이 아닌 생을 긍정하는 자아 각성의 과정이다.(p359)



누군가 스페인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고 하면

이 책을 반드시 읽고 가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도 서 :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의 이베리아 반도 기행

저 자 : 차백성

출 판 : 들메나무

발 행 : 2025. 11. 04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