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거 얼마면 돼?

< 영화 : 센티멘탈 밸류 >

by 밀밭여우

‘사랑? 그거 얼마면 돼?’

2000년에 한창 인기 있었던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원빈이 했던 이 대사가 그 당시 유행했었다.

돈으로 살 수 없기에 더 간절해지는 사랑.

연인의 사랑도 그렇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받고 싶은 사랑은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영화 [센티멘탈 밸류]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자란 두 자매의 이야기다.

Sentimental Value는 값을 따질 수 없는 개인의 감정에

뜻깊은 의미를 지닌 어떤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기억 같은 것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2층의 벽난로를 통해 1층에서 말하는

소리를 듣는 장면도 그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영화감독인 아버지는

예술인의 자유로운 영혼을 구속할 수 없다는 구실(?)로

아내와 두 딸을 버리고 집을 떠났다.

두 딸이 성인이 된 지금,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에 집으로 찾아온 아버지는

뜬금없이 연극배우인 큰 딸을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며

자신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를 제안하지만

큰 딸 노라는 단박에 이를 거절한다.

결국 다른 배우를 섭외해 촬영에 들어갔는데,

시나리오를 통해 아버지의 내면에 깊이 박혀있던 상처가

드러난다.

아버지의 어머니가 2차 대전 당시 반나치 활동에 연루돼

고문을 받았었고 그로 인한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자살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은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성인이 되어서도 가정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딸에게도 상처를 남기는 악순환이

부녀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대물림된 것이다.

큰 딸 노라는

딱히 꼬집어 얘기할 수 없는 혼란과 우울증으로

자살기도를 할 만큼 힘들어하는 반면,

작은 딸 아그네스는

제법 의연하게 자신의 가정을 이루어 잘 지내는 듯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손자를 영화에 출연시키고자 할 때

그녀 자신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를 거절한다.

그녀 역시 그렇게 멋져 보였던 아빠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자신의 아들이 똑같은

상처를 받게 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똑같은 환경 속에서 넌 이렇게 잘 자랐는데,

난 왜 이렇게 엉망인거지?”

노라가 말하자 아그네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에겐 언니가 있었잖아.

언니가 내 머리를 감겨주고 빗겨줘서 학교에 갈 수 있게 해 줬잖아.”

난 이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아그네스는 그나마 언니라도 의지하고 살았지만

어린 노라에게는 의지할 언니가 없었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큰 정서적 차이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기억과 추억 역시 센티멘탈 밸류에 속한다.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영하 작가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 했다.

뒤늦게 동생의 조언으로 시나리오를 읽고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하는 큰 딸 노라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그 집을 배경으로

새 영화를 찍으며 화해 모드로 영화는 끝이 났다.

그동안 내가 본 북유럽 영화는 날씨만큼이나 암울한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영화는 그나마 해피엔딩으로 끝나 마음이 훈훈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나눈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기에 받는 상처가 더 아프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오직 가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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