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비슷해도 같지 않아
우리는 수업시간에 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거 똑같다'라고 하면 '아, 똑같구나'하고 외우고 받아들였다. 참 착한 학생들이었다. 어렸을 적에 그렇게 부모님을 귀찮게 괴롭혔던 끊임없이 이어지던 '왜?'라는 질문은 언제부터 하지 않게 된 것일까?
이번에는 그렇게 착하게 '그렇구나'하고 외워왔던 것 중 하나인 'must'와 'have to'를 살펴보자.
조동사를 배울 때 진짜 꼭 나오고, 중요하다면서 헷갈린다고 조심해라면서 가르쳐주는 부분이다.
must는 '~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나타내는 조동사다. 여기까지는 별로 어렵지 않다. 그다음부터가 중요하다. 'have to 동사원형'을 들이대면서 얘도 '~을 해야 한다'는 뜻을 가졌으며 'must와 같다'고 한다.
그리고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면서 말한다.
긍정일 때는 똑같이 '~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부정일 때는 뜻이 달라진다.
must는 조동사 이므로 부정형은 'must not'이 되고 '~하면 안 된다, 하지 마'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have to 동사원형'은 'don't have to 동사원형'이 되고, '~할 필요가 없다, 안 해도 된다'가 된다. 그래서 '둘의 뜻은 부정형 일 때 달라진다'라고 한다.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이게 무슨 경우 일까. 긍정일 때는 똑같다가 부정일 때는 뜻이 달라진다니. '~을 해야 한다'를 부정하면 '~을 안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을 안 해도 된다'로 바뀐다니.. 그렇다면 그 둘은 긍정일 때도 묘하게 뉘앙스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전에 해결해야 될 문제는 '왜 '~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나타내는데 '가지다'라는 뜻을 가진 'have'가 쓰였냐'는 것이다.
자, 그럼 have와 '~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나타내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have to의 형태를 한 번 해부해보자.
- have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을 가지다'라는 뜻이다.
- 뒤에 to가 왔고 뒤에 동사원형, 즉 부정사가 왔다.
- 그러면 'to 부정사' 형태로 '앞으로 할 행동'이다.
- 그리고 'to 부정사' 형태는 쓰임이 한정되지 않아 명사, 형용사, 부사로 쓰일 수 있다.
- 그러면 여기서는 have의 목적어로 '명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 따라서 'have to 부정사'는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을 가지다'라는 뜻이다.
- 즉, 어떤 행동을 할 '의무'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have to 부정사'는 '~을 할 의무를 가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 'have'의 '~을 가지다'라는 의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must와 같이 '~을 해야 한다'와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부정일 때는?
- have는 일반동사 이므로 부정형은 do not(또는 does not)을 앞에 붙인다.
- 그러면 'don't have'는 '~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 따라서 'don't have to 부정사'는 '~할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즉, '~할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는 뜻은 '~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다!
몇몇 문제집에서는 must와 have to와 should를 묶어서 의무를 나타내는 조동사라고 하는 것을 봤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have to'는 조동사가 아니다. must와 함께 조동사인 것처럼 배우지만 그냥 일반 동사 'have'는 to + 부정사를 목적어로 취할 때는 '~할 의무를 가진다'라고 해석되는 것이 더 적절하게 보인다. have는 'to 부정사'를 목적어로 취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to + 부정사'를 나름 정의해보고 또 이 번에 'have to 동사원형'을 살펴보고 난 뒤에는 그 믿음이 더 확실해졌다. 의무를 나타내는 조동사를 배우면서 비슷한 의미의 '동사구'를 참고하는 의미로 알아두는 게 적절한 것 같다.
'have to'를 조동사라고 하기에는 일반적으로 배운 조동사와 많이 다르다. 내가 아는 조동사라 함은 인칭과 수에 관계없이 형태가 같고, 부정형을 만들 때는 조동사 뒤에 not을 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have to는 인칭과 수에 따라 달라지고(has/have to), 부정형은 have앞에 일반 동사의 부정에 쓰이는 'do/does not'을 쓴다. ('완료 시제'는 적어도 have나 has뒤에 not을 붙인다.)
어디까지나 알아보다가 갑자기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