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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하우스군 Dec 21. 2015

1. 말 잘 듣는 사원

처음 부서  배치받았을 때

SNS를 하다가 이 회사에서 좋아하는 직원 상을 보았다.


'까라면 까고 시키는 대로 정해진 시간 안에 척척 해오는 노예형 인재'

'1%의 엘리트가 99%의 부속품을 이끌어가는 조직문화'


나는 딱  그곳의 99%, 노예였다.


처음 부서 배치를 받았을 때, 대표이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중점 과제를 진행하고 있던 이 부서는 매우 바빴다. 촉박한 일정을 채워야 했고,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모양과 기능의 제품은 끝없는 오류를 만들어냈다.

이해한다. 한 사람이라도 일손이 더 필요했고, 회사의 효율적이지 않은 시스템 상 수 많은 '노가다' 업무와 일을 배우지 않고 간단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처음 들은 말은 


"오늘부터는 주말에 약속 잡지 마. 그리고 일찍도 가지 마. 너네가 일찍 가면 선배들이 싫어하고 우리 부서 분위기 흐려져."


였다. 누군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부서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모두가 다 같이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걸까. 시간이 흐르면서 진짜 일도 많기도 많았지만,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도 보였다. 담배를 피우러 가면 40분에서 1시간 가까이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저녁을 먹고 나면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10시쯤에 돌아와서 부장에게 인사를 하고 퇴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산주의도 아니고, 빨리 자기 일을 하고 집에 가서 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와야 부서원들이 더 기운이 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냥 앉아있었다.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물론 진정 훌륭한 사원이라면, 이 회사가 원하는 사원이라면 먼저 다가가서

"선배님, 뭐 도와드릴 거 없을까요?"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몇 번 고민도 했다. 

심지어 내 스스로 군생활과 인턴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그런 짓에 꽤 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그 말을 꺼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의욕이 쌀 한톨 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두 달 동안, 부모님께 일이 바빠서 11시에는 퇴근하고 집에서 잔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매일 새벽 2,3시에 잠들고 주말도 없이 일했다.


그랬던 것도 나름 반 년이 되어간다. 어제 수요일이었는데, 오늘은 금요일이라서 놀랄 정도로 시간은 빨리도 간다. 하지만 처음이라서 그럴 거야, 적응되면 다 사람 사는데 좋아지겠지 하면서 하루하루, 한 달 두 달 버텼던 마음은 아직도 적응하기가  힘들어하고 있다. 


처음에 너무 힘들고, 나 또한 어설프고 마음의 갈피를 찾을 수 없을 때는 회사에서 털어놓고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회사에 남은 사람은 남아 있는 이유가 있었고, 그들은 99%의 부속품이 되어 돌아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그 99%가 가지는 돈과 사회적 직위를 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모르겠다. 나에게 나름의 최선의 위로와 걱정을 해줬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도 이 사람들이 나를 배려해주고 걱정해준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지금은 내가 이상한가 싶기도 하다. 좀 더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고, 일만 하는 기계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내가 모자라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은 순간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다 그러고 살아.' 이 말을 들으면 난 어딜 가도 부적응자가 되겠네. 이런 생각도 든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라고, 나가면 개고생 한다고. 자식 낳고 키워보라고 여기 만큼 좋은 데가 없다고. 부모님 자주 뵙고 연락드리는 것보다도 돈 넉넉히 받으며 잘 사는 게 효도라고. 이런 말을 들으면서 나는 점점 모자란 놈이 되어가고 있다. 


모자란 놈이 된 김에, 말 잘 듣는 사원도 포기하려고 한다.

계속 저항하고 내 자유와 시간을 찾고자 한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는 내가 이상한 놈이 되는 현실이 슬프지만 그래도 행복을 쟁취하고 싶다.


오늘도 심란한 생각만 한 가득 하다가 잠을 청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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