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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하우스군 Dec 31. 2015

3. 버틸 힘이 있어 보이세요

버티는 것이 옳은 것인가

결국 다시 출장을 오게 되었다.

나에게 출장을 거부할 권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12월 16일 귀국해서 바로 화요일에 출장을 나가라고 지시받았다. 일부러 비자를 신청하지 않았다. 까먹은척 했다.

그 다음엔 12월 24일에 출장을 가라고 지시 받았다. 이번엔 결재는 올려놓고 사진을 깜빡하고 내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에는 27일 일요일에 들어가라고 지시받았다. 물론 주말에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오려고 했던 나는 그 지시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서야 출장을 오게 되었다.


솔직히 24일에 출장을 가도 내가 그 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가서 크리스마스 전날이라고 술 먹는데 따라가서 숫가락, 젓가락 깔고 회사생활 열심히 해야한다는 말만 끊임없이 듣겠다 싶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역시 출장자들은 이틀 내내 술만 먹었다)


자꾸 출장을 가라고 나를 압박하는 부장에게는 당신은 가족이 없냐고 되묻고 싶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나에게는 그럴 권한 조차 없구나 싶어서 회의감도 들었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도 없는 시기에 나를 보내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 참 슬프기도 하고, 부장도 그럴 수 밖에 없는 회사인가 하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착잡해졌다.


잠깐 한국에 머무르던 주에 출장에서 막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드리려고 했는데, 너무 정신없이 일이 쏟아지고 끊임없이 전화도 왔다. 마치 그 간 중국에서 하지 못한 업무지시를 다 한 번에 내리듯이. 우리부서가 아니더라도 마케팅, 품질 등 각 부서에서 하루종일 전화가 정신없이 밀려왔다. 중국에서 머리를 자르지 못해 저녁을 먹고 잠시 이발하러 나가는 와중에도 전화는 끊이지 않았다. (물론 나는 머리를 자르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서 업무를 마저 보았다) 그나마 다행이던 것은 이렇게 잠시 회사 밖에서 머리를 자르는 동안 월요일 부터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드리려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버지와 통화를 마치고는 또 어김없이 회의감이 몰려왔다. 내 소중한 것들을 챙길 여유도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는데, 어느새 이미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고 앞으로 이런 일은 더 심해지겠지 내 인생은 더 이렇게 흘러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태로 정신없이 살다가 40살이 넘어가면 갑자기 회사에선 나가라고 하겠지...'


'나는 그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세상 물정이 어떤지, 새로운 어떤 일을 도전할 준비는 되어있을까?'


라고 나에게 되물으며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직 퇴사하겠다고 마음먹은 날까지는 시간도 있고, 사람이 싫어서 그만두지는 말자고 다시 처음부터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고 결정하자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생각하지만 이 곳에서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내가 원하는 행복을 찾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만 강해진다.


사실 이런 내 생각을 검증(?) 받고자 많은 사람과 대화를 시도했다. 이미 기울어진 내 마음에 균형을 잡아보고자. 하지만 마음에 박혀서인지  회사 내의 사람들에게 듣는 조언이 이상해서인지 마음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고 있다. 어두운 곳에 숨고만 싶고 회사 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어서 사내 심리상담을 이용하기 시작했지만, 그 곳에서도 버텨보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부장의 지시를 어겨가면서 출장을 미루는 행위도


"버틸 힘이 있어 보이세요. 그렇게 적응해 나가고 계신거에요. 마음에 힘이 있어보이니 계속 그렇게 견뎌보세요."


라는 말로 위로 받고 있었다. 그게 적응하는건지 내가 그런 힘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거니와 솔직히 언제까지 그런 명령불복종이 통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힘이 있어보인다는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생각해봐도 이런 행동으로 버티는 사람이 회사에 잘 적응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럴때마다 이 곳을 잘 다니는 어른들이 참 놀랍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무섭기도 하다. 이 힘든 사회를 어쩜 이리 웃으면서 몇십년간 유지해온 것인지. 어떤 힘이 그들을 이 사회에서 살아가게 만든 것인지.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른들과 달리 이 곳에서 버틸 힘이 없다. 버텨가면서 산다는 표현 자체가 옳다는 생각도 안든다. 한번 뿐인 내 인생을, 내 젊음을 왜 버티기만 하면서 보내야 하는건지. 그 버팀 후에는 진정한 행복이라도 오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부터 최대한의 행복을 찾고 싶은 것이 잘못됐다면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곳에서 살고 싶다.









※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어두운 곳에 숨고만 싶고, 우울해져만 가는 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글을 쓰고 브런치에서 다른 분들 글을 읽으며 조금은 괜찮아지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화장실에 숨어서 조금씩 글을 쓰고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 작가신청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냥 제가 징징대는 일기에 불과한 이런 글을 이 공간에서 발행도 하게 되었습니다. 요 며칠 나름 갑작스런 조회수, 댓글 등에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쓰는 글이 생각보다 많은 분들에게 영향을 끼칠까봐 무섭기도 합니다. 그만큼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글을 쓰고자 하지만, 아무래도 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다보니 읽음으로써 불쾌함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미리 죄송한 말씀과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응원하고 좋아해주시는 분들께는 덕분에 제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힘을 받게 되었다는 말씀과 감사함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겠지만, 저를 잃지 않고 행복한 삶을 찾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글은 여전히 연재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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