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이야기
터키라는 나라는 분명 우리 한국인들에게 각별합니다. 대한민국과 터키, 두 나라의 특별한 인연은 한국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인들은 터키의 파병이유를 고구려라는 고대사(古代史)에서 찾았고 그들의 참전의지를 숭고한 형제애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라 불렸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준결승전의 명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터키라는 나라를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터키가 한국전쟁에 파병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압도적인 화력과 전력으로 무장한 북한에게 우리나라는 밀리고 있었습니다. 200대가 넘는 북한의 전투기와 폭격기는 하늘을 뒤덮었고 240대가 넘는 소련제 탱크는 남쪽을 향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군의 8배가 넘는 700여문의 포는 모든 전선에서 우리 국군 진지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사실 북한이 남침하기 전에는 북한군이 이렇게 강한지 상상도 못했던 우리 국군은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놀란 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결성된지 얼마되지 않았던 국제연합(UN)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역시 화들짝 놀랬습니다. 소련과 중공을 등에 엎은 북한은 강력했으며 자유주의 진영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한반도가 북한에 넘어가면 다음은 일본 차례고 그 다음은 미국이 될 판이었습니다. 유럽에서도 소련의 서진(西進)으로 동유럽 정권들이 도미노로 자빠지는 상황속에서 북한의 남침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UN은 신속하게 결의안 82호, 83호를 연달아 통과시키며 북한군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무시하자 결의안 84호를 통과시켜 한반도에 대한 즉각적인 군사지원을 결의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북대서양에 접해있는 국가들의 모임인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역시 미국을 따라 자유주의 진영의 단결력을 보여주기위해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개월만인 1951년 1월, 아이젠하워를 총 사령관으로 하는 나토군이 창설되었고 총 96개 사단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들이 나토군 휘하로 소집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은 결코 남일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터키는 나토(NATO)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였고 한국전쟁은 터키에게는 찬스였습니다. 그 이유는 소련이 터키를 향해 서서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터키는 뒤에서 자신들을 도와줄 존재가 절박했습니다. 하지만 나토와 미국은 그 요청에 냉담했습니다. 일단 터키의 위치상,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회원국이 되기에는 북대서양과 너무 먼 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국들과 달리 이슬람권 국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미국의 막대한 규모의 경제 원조를 터키와 함께 나눌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터키는 다급했습니다. 공산주의 일진 소련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나토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나토는 외면했습니다. 이 와중에 한국전쟁이 터진겁니다. UN이 한반도에 대한 군사지원을 결정하자 총 22개 나라가 지원을 약속했고 그 중 16개 나라가 파병을 결의했습니다.
터키는 빛의 속도로 파병을 결정했고 신속하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해 국제사회에 터키가 큰 기여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해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인 총 5,455명의 병력을 파병했고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 병력을 상륙시켰습니다. 전쟁이 발발한지 석달만인 1950년 10월 17일 터키의 보병여단 선발대가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동기가 무엇이든 터키의 보병 여단은 미군 25사단에 배속되어 4년간 엄청난 전투를 치루었습니다. 3천명이 넘는 전사자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그 두 배가 넘는 적군을 섬멸시켰습니다. 함께 전투를 치른 미군과 한국군들은 터키군의 용맹성에 엄지를 치켜세웠고 국제사회는 터키군을 인정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전쟁 파병 11개월 만인 1951년 9월 20일, 터키는 그토록 염원하던 나토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토가 원년 멤버 12개 나라를 제외하고 최초로 받아들인 가입국이 바로 한국전쟁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한 터키와 그리스였습니다. 그리스 역시 나토 가입권을 얻기 위해서 UN 참전국중 다섯번 째 규모인 1,263명을 파병했고 그 보답으로 터키와 더불어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가입이후 그리스와 터키는 나토의 동쪽 경계를 책임지는 새로운 회원국으로서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경제원조를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회원국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은 전체 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여 보복하겠다는 나토의 조직문화는 터키를 소련으로부터 지켜주었습니다.
이렇듯 터키가 한국전쟁에 파병한 가장 큰 이유는 나토에 가입할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를 통해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려던 것이 숨겨진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터키에는 현재도 나토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중요한 미사일 기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흘린 그들의 피와 땀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의도가 순수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여전히 터키는 한국인들을 위해 피를 흘려준 형제의 나라이자 혈맹임에는 변함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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