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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박스 Jan 14. 2018

히틀러에게 경례대신 팔짱을 끼고 비웃고있는 남자

엄청난 담력이다...

1936년 독일에서는 독재자 히틀러의 극악무도한 통치가 한창이었습니다. 히틀러의 명령을 거역하면 당연히  

당사자뿐만아니라 가족까지 전부 모두 죽임을 당했었습니다.


그런 히틀러에게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히틀러에게 어느 누가 경례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최근 IT 전문 매체인 매셔블에서 히틀러에게 경례를 거부했던 남성 란트메서를 소개했었습니다. 

1931년 란트메서는 블룸 앤 보스 조선소 노동자로 일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21살의 나이에 나치당에 가입했었습니다.


그러나 4년 후인 1935년 란트메서는 유대인 여성 에클러와 결혼을 한 뒤 당에서 축출 당했습니다.


그 해에는 딸 잉그리드도 태어났기 때문에 청천병력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둘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1936년 6월 13일 독일 함부르크 블룸 앤 보스 조선소에서 SSS 호르스트 베셀 호의 진수식이 열렸습니다. 수많은 독일인들이 그 행사에 동원되었고 그 중엔 란트메서도 있었습니다.


이 선천행사엔 히틀러와 그의 오른팔 루돌프 헤스가 참석했으며 동원된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히틀러를 향해 팔을 뻗어 경례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26살이었던 란트메서만큼은 홀로 팔짱을 낀 상태로 비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여성과 결혼한 란트메서는 도저히 히틀러에게 경례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란트메서의 그런행동은 누군가에게 사진으로 찍히게 됩니다.


사진이 찍힌걸 알게 된 란트메서와 에클러는 덴마크로 도피하려했지만 결국 사진이 촬영된지 1년이 지난 1938년 발각되었습니다. 란트메서는 홀로 나치 뵈르거모르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임신중이었던 에클러 역시 체포당해 또 다른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에클러는 감옥에서 둘째 딸 이렌느를 낳을 수 밖에 없었고 이후 두 딸은 고원으로 보내졌습니다.


아이들을 빼앗긴 에클러는 여러 강제수용소에 옮겨졌으며 1942년 베르부르크의 한 안락사 센터에서 1만4천명과 함께 잔인하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란트메서 역시 2년 8개월간의 수용소 생활을 끝내고 출소했지만 1944년 2월 강제징병되어 전쟁터로 끌려간 뒤 크로아티아 작전 중 사망하였습니다 이 둘의 끝은 비극일지라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당연한 행복을 누릴수 있는 것 아닐까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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