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折不屈 不退戰 常勝怒濤
제2보병사단은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재편되기 전까지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에 주둔한 대한민국 육군의 핵심적인 보병사단이었습니다.
3군단 소속의 예하 사단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임무들을 수행해왔으며, ‘노도부대’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19년, 제2보병사단은 보병부대로서의 임무를 마무리하고 공수사단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예하 부대와 소속 장병들은 같은 3군단 소속인 제12보병사단과 제21보병사단으로 이관되었습니다.
제2보병사단은 1947년 12월 1일, 조선경비대 제2여단을 모체로 창설되었습니다. 이 여단은 제2연대, 제3연대, 제4연대를 기간부대로 하여 대전에서 원용덕 대령을 초대 여단장으로 창설되었습니다.
이 부대는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1948년 여순사건 진압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부대의 기세가 성난 파도와 같다 하여 ‘노도부대’라는 별칭을 하사했습니다.
이후 1949년 5월 12일, 제2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제2보병사단은 제5연대, 제16연대, 제25연대를 주축으로 하여 의정부 전투에 투입되었지만, 예하 부대가 도착하는 즉시 포천 전선에 투입되면서 부대는 큰 피해를 입고 궤멸되었습니다.
결국 한강 방어선 전투가 끝난 1950년 7월 24일에 사단은 해체되었고, 예하 병력들은 대구지구 방어사령부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1950년 11월 17일, 서울 성동공업중학교에서 제17연대, 제31연대, 제32연대로 재편성되었으며, 1951년 5월 16일에는 용문산 전투의 뒤풀이로 알려진 파로호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1952년 10월 14일에는 저격능선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1953년에는 제1야전군에 배속되어 화살머리고지 전투 2차전을 치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1967년 국방부는 육군의 3개 사단을 각각 특정한 전투환경과 작전에 적합하도록 전문화시키는 특성화 사단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제2보병사단은 산악사단으로 선정되었고, 1968년 1월 23일, 미 육군 제10산악사단을 벤치마킹하여 산악전투에 특화된 사단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때 제5보병사단은 공정사단으로, 제11보병사단은 상륙사단으로 각각 전환되었습니다.
제2보병사단은 산악사단으로 전환을 준비하면서 1967년 12월, 제2사단 수색대가 스키훈련 부대로 지정되었고, 설한지에서 스키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로써 제2보병사단은 한국군에서 특전사에 이어 두 번째로 전투용 스키훈련을 실시한 부대가 되었습니다.
특화사단 체제가 중단되면서 제2보병사단은 다시 일반 보병사단으로 원위치되었으나, 사단 예하 부대의 스키 훈련은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스키부대 임무는 1981년 건군 33주년 국군의 날 행사를 끝으로 해제되었으며, 이후 스키훈련 임무는 특전사로 일원화되었습니다.
2019년 4월 16일, 제2보병사단은 예하 연대들을 인접 부대와 통폐합시키는 과정을 거쳐 제2작전사령부 예하의 특공여단을 사단에 배속시켜 공정사단 개념의 신속대응사단으로 개편될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17연대는 제12사단으로, 제31연대는 제21사단으로 이관 및 통합되었으며, 제32연대는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201특공여단과 203특공여단이 제2사단에 배속되었습니다. 제2보병사단의 개편 과정에서는 제7기동군단으로 배속될 가능성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제3군단에 배속되었습니다.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개편된 후에는 공중기동을 통해 빠르게 적진에 투입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부대로 거듭났습니다.
제2보병사단이 보병사단 시절 주둔했던 곳은 인제, 원통, 양구에 걸쳐 있었습니다. 이 지역들은 혹독한 기후와 험난한 지형으로 인해 군인들에게는 매우 힘든 환경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제2사단에 배치된 병사들은 어디에 주둔하든 고생이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메이커 사단임에도 불구하고 전방 철책 근무를 하지 않았던 제2사단은 3군단의 예비 사단으로 후방에서 지속적인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이 시기 제2사단의 훈련 규모와 훈련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으며, 보병사단 중에서도 가장 많은 훈련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평균적으로 15일에 한 번꼴로 훈련이 실시되었으며, 이로 인해 제2사단의 병사들은 강한 전투력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혹한기 훈련을 경험하면 제대 후 한동안 웬만한 추위에는 끄떡없을 정도로 체력과 정신력이 단련되었으며, 제2보병사단은 팀 스피릿 훈련에 가장 많이 참가한 부대로도 유명했습니다.
산악전, 대침투작전, 그리고 여러 전투훈련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러한 훈련을 통해 사단의 전투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원의 의미 : 우주 만물의 근원, 육군 태동의 근원을 의미하며 화합 단결로 하나가 되자는 뜻
청색 : 애국지성의 정신으로 조국 수호의 의미
백색 : 백의민족 상징
청색 : 청년의 기백 및 젊은 혈기 의미
적색 : 애국과 정열을 상징
본부근무대
공병대대
정비대대
보급수송대대
화생방지원대
수색대대
의무근무대
정보통신대대
헌병대
전차중대
방공중대
무인항공대
여단본부대
제1보병대대(12사단 신병교육대)
제2보병대대(화령장 전승대대)
제3보병대대(수도탈환대대)
군수지원대대
제17보병여단은 제12사단으로 소속이 변경되기 전까지 제2보병사단의 중요한 예하 부대였습니다.
이 여단은 제1보병대대, 제2보병대대, 제3보병대대, 그리고 군수지원대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전투력과 역사적 중요성에서 탁월한 부대였습니다.
특히 제17연대는 1947년 창설 당시 육직부대로서 수도경비사령부에 예속되어 있었고, 옹진반도를 사수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안강 기계 전투에서 방어전을 펼쳤으며, 인천상륙작전에도 대한민국 육군부대 중 유일하게 참여하였습니다.
제2보병사단 시절, 17연대는 전 부대가 하나의 울타리 안에 주둔하고 있었고, 인제 지역에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부조리가 꽤 심했던 부대였습니다.
제12사단으로 이관된 지금은 사단의 예비대로서 다양한 훈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여단본부대
제1보병대대(진격대대)
제2보병대대(불곰대대)
제3보병대대(금성대대)
군수지원대대
제31보병여단은 제2보병사단 시절 훈련이 가장 많았던 연대 중 하나입니다. 이 여단은 제1보병대대, 제2보병대대, 제3보병대대, 그리고 군수지원대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제1대대는 신병교육을 담당했으며, 여단이 한 울타리 안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군부대 안에 마을이 위치해 있었고, 이로 인해 부대의 생활과 훈련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연대는 교육훈련과 분대 단위 사격을 매일같이 실시했으며, 주둔지에 복귀하면 다음 훈련을 준비하는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제31연대는 2019년 말 제21사단으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제21사단 예비연대였던 제63연대가 제31연대에게 신병교육대를 포함한 모든 작계와 인원을 인계하고 해체되었습니다.
연대본부대
제1보병대대(명문대대)
제2보병대대(금성대대)
제3보병대대(철혈대대)
제32보병연대는 1950년 11월 13일, 서울특별시 중구의 성동공업고등학교에서 창설되었습니다.
이 연대는 창설 직후 보충대에서 병력 1,000명을 보충받아 제2대대와 제3대대를 편성하여 독립연대로 거듭났습니다.
제32연대는 이후 가평지구 전투에 참전하였고,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일대에서 부대 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하며, 후방지역 공비 소탕 작전에 주로 참가했습니다.
이후 제32연대는 734고지 전투, 금성지구 전투, 저격능선 전투 등 중부전선의 여러 고지전에서 활약하였으며, 화살머리고지 전투 2차전에서도 고지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대는 양구 주둔 이후 울진 삼척 대침투작전에 참가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팀 스피릿 훈련과 KCTC 전문대항군 임무도 수행하였습니다.
제32연대는 제2보병사단 내에서도 가장 악명 높고 빡세기로 유명한 부대였습니다.
최우수 부대로 선정되었지만, 2019년 12월 31일자로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독수리연대 역사공원이 건립되었습니다.
연대본부대
제18포병대대(충무대대 - 21사단으로 소속 변경)
제62포병대대(화랑대대 - 21사단으로 소속 변경)
제63포병대대(인헌대대 - 12사단으로 소속 변경)
제633포병대대(무공대대 - 2019년 해체)
제2보병사단 포병연대는 3개의 자주포대대와 1개의 견인포대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연대는 전 부대가 신 막사를 사용하였으나, 훈련 강도는 여전히 매우 높았습니다.
3개 대대가 인제군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자주 12사단의 지원 요청을 받아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전술훈련 때마다 포를 쏘는 일이 많았으며, 특히 후반기 교육을 받던 자주포 조종수들에게는 최악의 부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제633포병대대는 제2사단 포병연대 중에서 가장 악명 높았으며,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어 진입과 철수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 부대는 특히 혹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병사들에게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1대 원용덕 중장
2대 채원개 대령
3대 유승열 소장
4대 송호성 준장
5대 유재흥 장관
6대 이형근 대장
7대 이한림 중장
8대 함병선 중장
9대 정일권 의장
10대 강문봉 중장
11대 김응수 소장
12대 강영훈 총리
13대 박현수 소장
14대 문형태 대장
15대 임충식 장관
16대 박기병 소장
17대 문형태 대장
18대 송효순 준장
19대 한태원 소장
20대 이규삼 소장
21대 송호림 중장
22대 정영홍 준장
23대 김학원 준장
24대 김정운 준장
25대 신봉균 소장
26대 백윤기 소장
27대 최성택 중장
28대 윤종화 소장
29대 김국경 소장
30대 이해영 소장
31대 권준택 소장
32대 고진석 소장
33대 박광영 대장
34대 도일규 대장
35대 이호승 중장
36대 김영갑 소장
37대 김희중 중장
38대 차원양 소장
39대 김병관 대장
40대 민경백 소장
41대 한기호 중장
42대 이한홍 소장
43대 주용수 소장
44대 이순진 대장
45대 고현수 중장
46대 이종섭 중장
47대 김종문 소장
48대 한영훈 소장
49대 장광선 중장
제2보병사단은 대한민국 육군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부대입니다. 보병사단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한 후, 제2신속대응사단으로 재편된 이 부대는 여전히 대한민국 국방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부대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후세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해체된 제2보병사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