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영감은 모임에 나가고 혼자서 점심을 뭘 먹나 하다가 자장면 생각이 났다. 우리 동네 중국집 자장면은 모두 5500원이다. 그런데 한 정거장쯤 떨어진 곳에 3900원짜리 짜장면 집이 생겼다. 윗도리를 걸치고 나갔다. 산책 삼아 슬슬 걸어갔다. 중국집 앞에 서서 아차,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아뿔싸 ~!! 지갑을 안 가져왔다.
에이 ~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한 정거장을 다시 걸어서 왔다. 배가 고파왔다. 못 먹고 왔다 생각해서인지 유난히 짜장면 생각이 더 났다. 집에 들어가 카드가 들어있는 손지갑을 얼른 찾아들고 집을 나서 또 한 정거장쯤 걸었다. 첫 번째와 달리 배고픔의 신호를 받고 있는 터라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숨이 약간 가빠왔다.
중국집 앞에 서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입구 유리창에 현금 가격 3900원이란 글자가 커다랗게 적힌 A4 용지가 붙어 있다. 현금 가격 3900원. 아뿔싸. 카드 지갑을 열어봤다. 보통 때는 혹시나 싶어 만 원짜리 지폐를 한 장 정도 넣어 놓기도 하는데 이날은 안 들어 있다. 맥이 확 풀렸다. 그냥 돌아가려다 온 걸음이 너무 아까워 문을 살며시 열었다. 아르바이트생과 눈이 마주쳤다. "짜장면, 카드는 안돼요?" 아가씨 묘한 표정으로 고개만 절레절레한다. 무안하기도 하고 내가 상대에게 너무 불쌍한 노인네로 보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우리 집에 현찰 있는데." 했다. 아르바이트생은 말없이 더 얄궂은 미소를 띤다.
허망하게 다시 되돌아오며, 할 수 없다 5500원짜리라도 먹자 생각했다. 다른 중국집을 찾아 집 쪽으로 걸어왔다. 이제는 산책이 아니다. 맥이 다 빠지고 배가 고파 휘청하려 한다. 미처 중국집에 다다르기 전에 24시 마트가 보인다. 짜짜로니 2 봉지 사 와서 집에서 해 먹었다.
다음날,
오전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버스에서 졸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 집에서 한 정거장 못 미쳐 내려야 하는데 행여나 지나칠까 봐서였다. 나는 어저께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과 짜장면 먹고 싶은 맘이 두루 섞인 맘으로 다부지게 마음을 먹고 자장면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문에 하얀 종이가 붙어있다. '금일 휴업" 다리가 푹 꺾인다. 세상은 왜 이렇게 나에게 가혹한 걸까.
일주일 후, 다시 자장면 집으로 갔다. 카드지갑 안에도 5000원짜리가 들어있고, 큰 지갑 안에도 만 원짜리가 몇 장이나 들어있다. 몇 번이나 지갑을 확인했다. 오늘도 입구에 잠시 서서, 하얀 종이가 붙어있나 살폈다. 아무것도 없다.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많지 않다. 기분 좋게 짜장면을 시켰다.
3900원짜리 만큼의 비주얼이지만 충분히 흡족하다. 한 입 넣다가, 아차, 코트와 머플러를 벗었다. 자장면 양념이 옷이나 머플러에 튀기면 곤란하다. 얼마나 벼루었던 3900원짜리 짜장면이었던가 양념까지 싹싹 깨끗이 그릇을 비웠다. 배도 부르고 흡족하다. 천천히 코트를 입고 스카프를 걸쳤다. 가방을 챙겨 들고 유유히 자장면 집을 나왔다.
11월, 적당한 날씨다 배가 부르니 발걸음도 여유 자작하다. 느릿느릿 저만치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걸었다. 목소리가 갈라지는 듯, 째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때서야 뒤 돌아봤다. 나에게로 막 뛰어오는 것 같다.
“돈 ~~~~~~~~~~요 ~~~~ 오~~~~~ 헥, 헥.”
화들짝, 놀래고 놀래서 나를 보고 뛰어오는 사람을 향해서 막 뛰어갔다. 얼마나 급히 뛰었는지 발이 접쳤다. 자장면 집 문을 열어젖히면서 숨 가쁘게 외쳤다. “고의가 아닙니다. 절대 본의가 아닙니다. 헉헉” 카운터 앞에 서서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돈을 냈다. 카운터 아가씨, 입가에 사풋 미소가 어린다. 후유, 아가씨 미소를 보아서는 오해는 안 한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아가씨 미소를 오해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