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큰 학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원을 한 햇수가 십여 년 정도는 되었으니 그동안 나와 인연을 맺은 아이들이 좀 많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들 중에 기억하고 있는 이름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은 몇 년을 꾸준히 다닌 몇몇 아이들 뿐이다. 그런데, 겨우 3달 정도 다닌 한 아이는 그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이름 석자와 함께 뚜렷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동네 학원이라,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원장실에 자주 들어와 짬짬이 TV를 보거나, 장기를 두거나, 특히 나랑 내기 장기를 두자고 졸라,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게 하였다. 그 아이도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원장인 나랑 친해지고 싶었던지, 매번 수업이 끝나면 원장실로 왔다. 나에게 껌도, 사탕도, 더러더러 하나씩 수줍게 건네주곤 하였다. 난 즉시 그 아이 이름을 기억했고, 자연히 잘 챙겨주게 되었다. 키가 유난히도 비쭉히 크고 여윈 아이는 항상 힘이 없고, 외로움을 띄고 있었다.
그날이 추석 전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날 그 아이는 바로 내 곁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몸이 안 좋다고 하였다. 남은 수업을 빠뜨리고, 집으로 가서 쉬라고 했더니, "오늘만 하면 며칠 쉴 텐데요." 하며 괜찮다고 하였다.
그다음 날부터 추석 공휴일에 들어가게 되었고 닷새 후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날, 그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긴 공휴일이 지나고 나면, 결석률이 많아, 담당 선생님들이 자신의 반 원생들을 체크하는데, 그 아이에게만은 내가 했다.
아! 이게 웬 소리인가? 너무 놀라서 더 이상 긴 말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그 아이 사촌네 집으로 전화를 하였다. 그 아이 사촌도 우리 학원생이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서는 울먹이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당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를 하고, 집안이 막 흔들리고 있을 때였는데, 그로 인해서, 엄마, 아빠가 별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가계를 하고 계셨기 때문에, 아이가 항상 먼저 집에 들어가 홀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은 엄마가 밤늦게 집엘 들어가는데, 대문이 활짝 열려있고, 현관문도 활짝 열려있어 이상하다 싶었단다. 열린 문으로 보니 대청마루에 책가방은 그대로 옆에 놓여있고, 옷을 입은 채로 자고 있더란다. 정말 자는 줄 알았단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무심코 흔들면서 일어나라 하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데 아이가 여전히 기척 없이 그냥 누워있어서 다시 나와 깨웠단다.
그때서야, 병원으로 아이를 옮겼지만, 아이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에는 이미 외로이 홀로 먼 길을 가고 있었다. 엄마가 울고 불고 해도 먼 길을 떠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 수는 없었다.
원인을 알아봤더니 아이의 머리에 아주 가느다란 실핏줄이 터져서 피가 미세하게 흘러 고여 있었던 것이다. 외상으로는 표가 없으니, 아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가끔씩 호소를 해도, 그럴 때마다 가벼운 두통이려니 생각하고 두통약으로 해결을 하고 보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가끔씩 있다고 한다. 단단한 시멘트에 머리를 박았다던지, 친구들과 싸울 때 머리를 맞았다던지, 그 당시에는 외상이 없으니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데, 뇌 속에 있는 핏줄이 터져서 미세하게 피가 흘러서 고이게 되면 그것이 뇌출혈이 되어버린단다.
추석 전 날, 아이는 엄마에게 두통을 호소하며 학원 안 가고 싶다고 한 것을, 엄마가 오늘만 가면 며칠을 놀 텐데, 왜 빠지느냐고 등을 밀어 보냈다는 것이다. 그날 학원을 마치고 돌아가 그렇게 된 것이다. 추석 전 날, 내가 아이의 안색이 너무 안 좋아 집에 일찍 가라고 한 것도 같은 사건으로 연결되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픔을 홀로 이겨내며, 홀로 먼 길을 가야만 했던 그 아이만은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불쑥불쑥 떠 오른다. 내 아들과도 한 학년이어서 같이 수업을 받은 아이다. 아들에게도 '너 그 아이 생각나?' 할 때가 있다. 아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아이와의 만남의 시간은 정말 짧았는데, 그 아이의 외롭고 해맑은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아 수시로 나를 아프게 때로는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