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빚

by 칠십 살 김순남

지하철 안에서 눈이 딱 마주쳤다. 상대가 반색을 한다. 나도 반색을 했다. 한때 취미생활 모임의 멤버였다. 내가 먼저 그만두었고, 그녀도 안 나간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느냐? 친했던 멤버의 이름을 떠올리며 서로서로 안부도 물었다. 그녀가 먼저 내렸고 다시 연락해서 한번 만나자며 폰 번호도 교환했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그녀에게 빌려주고 못 받았던 이만 원이 떠올라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그녀와 딱 눈이 마주치고, 그녀를 알아보았을 때 먼저 떠 오른 것은 이만 원이었다.


취미생활을 함께 하던 그룹은 한 달에 정기적인 모임이 있었고,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두 번 모이기도 했었다. 언젠가 정기적인 모임이 있었을 때다. 멤버 중 한 분의 따님이 결혼을 한다고 총무가 공지사항으로 발표를 했다. 회칙에 조의금은 회비에서 일정 금액 정해서 지출하지만 축의금은 항목에 없다며, 개인적으로 축하해 주면 좋겠다고 한다.


멤버가 20~25명 정도였다. 끼리끼리 친한 사람들끼리 따로 우의를 다지기도 했던 때라, 그 소식을 들은 친한 몇몇 사람들은 따로 결혼식에 참석하자고 하면서, 서로 간에 약속을 한다. 그때 축하를 받는 당사자도 있었던 때라, 모두가 축하한다고 한 마디씩 했다. 그중 한 분이 그날 참석 못 할 이유를 대면서 축의금을 미리 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멤버들도 아주 절친은 아니더라도 모임 때 자주 보았던 멤버이니 그냥 입을 닫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나도, 나도 하면서 축의금을 내었다. 그 분위기에 이 멤버도 그냥 넘어갈 수만은 없었던 것 같았다. 마침 한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에게 살며시 다음 모임에 나오면 줄테니까 이만 원만 빌리지고 했다. 멤버들 중에서 비교적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기도 하고, 빠지지 않고 나오는 열심한 멤버였기에 그러라고 하면서 편하게 이만 원을 빌려주었다.


다음 달, 그녀는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임에 빠지고 그다음 달 나왔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는 은근히 그녀가 돈을 갚을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모임이 다 끝나고 헤어질 때까지 돈을 안 주는 거다. 혹시 잊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할 기회를 보고 있다가 놓치고 말았다.


그다음 달에도 그녀는 아무 말 없었고, 스스럼없이 나를 대했다. 아마, 그 순간에는 나도 이만 원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다음 달인가, 아, 이만 원, 생각이 났지만 이미 몇 달이 지났기도 했고, 여러 멤버들이 한 공간에 있는데, 새삼 몇 달 전에 나에게 빌린 돈 이만 원을 갚으라는 말이 안 나왔다. 따로 둘만 있는 기회가 오면 넌지시 언질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하고 있어서 당분간 못 나온다는 소식을 총무가 공지사항으로 전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다가 내가 회원 탈퇴를 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가끔, 아주 가끔 그녀에게 빌려주고 못 받은 이만 원이 생각나기는 했었다. 이번에 만난 그녀는 글쎄. 아마 그 다음날 바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만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있었다. 참 쓰잘데 없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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