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끝자락, 공원 산책을 나갔다. 공원 사잇길에 떨어진 낙엽이 뒹군다. 미화원 아저씨가 빗질로 모아서, 커다란 쓰레받기에 쓸어 담아, 제 몸을 털어 노랗게 바래진 마른 잎사귀를 연신 떨구어 내는 큰 나무 아래로 수북이 쌓아 놓는다.
하늘을 보니 오후 늦게 쯤 빗방울을 떨어트릴 눈치이다. 그 빗방울에 낙엽은 진한 잎 냄새를 풍기며 나무둥치 아래로 쳐진 몸을 눕힐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시간을 거쳐서 그 나무 아래로 스며들 것이다. 낙엽은 자기를 떨군 나무에서 내년 봄, 새싹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것일까? 봄이 되어 우리가 환호를 내며 반기는 연한 새잎은, 지난 빛바랜 바싹한 몸으로 미화원 아저씨의 빗질에 쓸어 담겨 버려진 그 나뭇잎일까?
나에게는 몸이 불편한 친구가 있었다. 시집가서 모진 힘든 시간을 거치면서 언제인지 모르게 40대 초에 발병된 류머티즘은 그녀의 육신을 공격했다 그 공격으로 그녀의 팔과 손은 오므라졌고 다리는 제대로 정상적인 걸음을 옮길 수 없게 했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봉사해야 할 가정,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자녀들은 성실하고 훌륭하게 잘 자라서 그녀에게 행복을 주었고, 그녀에게 삶의 자랑을 주었다.
이들과 딸은 어느새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어있었다. 친구의 꿈은 두 아이가 혼인하여 가정을 꾸리고 잘 사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결혼 회사도 노크해 보았다. 드디어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은 아들이 선을 몇 차례 보고, 서로가 마음에 든 상대를 만났다. 둘은 마음이 통했고, 결혼을 약속했으며 부모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녀는 최대한 성장을 하고 기쁨으로 흥분하며 자리에 나갔다.
며칠 후, 친구가 나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그 날은 일종의 상견례 자리였다. 색씨집 부모님이 그녀를 보자, 차디찬 태도로 변해 버리더라며 자리가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더란다. 결국 그 혼사는 깨어졌다.
"내가 착각하고 살고 있었나 봐. 나는 내가 오래오래 살아야 저 아이들 뒤를 돌봐 줄거라 생각하고 이 몸으로 악착스럽게 버텼는데. 이제 보니 오히려 내가 저 아이들 앞에 걸림돌이 된 것 같아.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아이들의 길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하며, 말을 잊지 못하던 그녀는 뜬금없이 한마디 했다. "우린 꼭 '부활' 할 거야, 그렇지? 만약 부활이 없다면 난 정말 억울해." 나도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부활, 솔직히 자신이 없다. 결국 그녀는 아들의 결혼을 보지 못하고 갔다. 그녀 아들과 딸의 결혼은 그녀가 죽은 후에야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