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역 신림역(神林驛) &구 송정역(舊 松亭驛)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소고(小考)

by 칠십 살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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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역(神林驛)

폐역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정암길 12

주변 관광지 : 용소막 성당

방문일 : 2016년 6월




신림역(神林驛), 숲의 정령의 보호 아래 있던 마을의 작은 기차역. 이날, 이곳에 내린 사람은 나 혼자인 듯, 나를 내려놓자마자 떠나가 버린 열차의 뒤꽁무니를 보는 것도 잠시, 아~ 이렇게 한적한 곳이었어? 새삼, 황당한 이 만남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작은 驛舍 앞에서 보이는, 수많은 시간이 흘러간 흔적들. 뜬금없이 낯선 화물차가 들어오고, 무궁화열차가 잠시 정차하고 떠난다. 낡은 철로는 그때마다 그 무게가 힘든 듯, 덜컹덜컹 소리를 낸다. 지금의 나와 같구나, 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많이 달렸는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이 이 철로처럼 나를 지나갔구나.


이제 새로운 시대에 자리를 비껴줘야 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사라지고, 사람들에게 잊혀 간다는 것은 분명 쓸쓸한 일이지만, 만사가 그 쓰임이 다하면 언젠가는 가야 하는 것이 진리인 것을. 아무리 예전에 우리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하더라도, 흘러가는 세월 속에, 앞으로의 시간에 쓸모가 없다면 그냥 놔 두는 자비 따위는 없다. 내가 옛 그 모든것에 그러했던 것처럼, 나 또한 그리 될 것처럼.


사물이나 사람이나 존재하는 동안 충분한 쓰임이 되었다면 그 또한 값진 것인 것을. 그 정도로 충분히 족하다며 나 스스로를 다독거려본다. 돌아오는 길, 오솔길 끄트머리에서 뒤돌아보니, 푸른 녹음 뒤에서 살며시 얼굴을 내민 신림역이 보인다. 조심히 잘 가라는 듯, 이제는 어쩌면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듯, 확실하지 않은 슬픈 이별을 예상하며 배웅하는 늙은 내 친정엄마의 모습 같아 시린 마음 부여안고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신림역, 마지막 본 것이 2016년 6월, 2021년 2월, 결국 너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구나. 나의 오랜 조상들처럼, 언젠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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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송정역(舊 松亭驛)

폐역,

블루라인파크역으로 다시 태어난 역

국가등록문화재 제 302호




나는 당신에게 잊힐까요?

기적소리 처음 울렸던 1934년 12월 16일

일제의 군수물자 수송로 되었던 적,

새벽녘 암흑 불현듯 깨운 1950년 6월 25일

온 나라가 전쟁의 비극에 젖었던 적,

나는 견디고 버텨 끝까지 달렸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의 통학열차와

일터 나선 어른들의 통근열차 드나들 적,

주말이면 지척에서 물결치는 바다 감상하며

추억될 짧은 여행 떠났던 적,

나는 온갖 삶 싣고 기꺼이 달렸습니다.

나는 이제 역사가 되려 합니다.

더 이상 스쳐 지나갈 수 없는 바다와 멀리

더 이상 싣고 추억할 수 없는 사람들 떠나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사이가 되어 갑니다.

-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송정역]-


한때는 부식된 오랜 철로 옆에 세워진 표지판에 송정역의 독백이 있었다. 쓰임이 다하여 세상 밖으로 밀려나, 지금의 세상을 관조하며, 지난 자신의 삶을 독백하듯 뱉어낸 글이 가슴을 때렸다.


그의 독백처럼, 한때 송정, 해운대 바다를 따라 기적 소리 내며 달리던, 힘들었던 격동의 시대를 온 힘을 다하여 국가와 이웃에 봉사하며 견디어 온 세월을 뒤로하고, 새 시대에 맞추어 신 송정역에 새 驛舍를 내어주고, 구 송정역은 평화로운 지금의 세대에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이것뿐이라는 듯, 그는 오랫동안 남아있는 여력으로 우리에게 작은 쉼터를 마련해 주었다. 송정역 끄트머리 <미포 건널목>에서 시작하여 <청사포 새길>까지, 철길 산책로가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부산 시민의 사랑을 받았었다.


그러다가 2019년 11월, <해운대 블루라인파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 해변열차와 스카이 캡슐을 타고 이 구간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구 송정역은 한때 내 가슴을 아리게 했던 독백조차도 궁상맞은 옛 늙은이의 궁시렁에 불과하게 되어버린 걸까. 그의 독백조차 사라진 그곳에, 아이들 장난감처럼 생긴 예쁜 열차와 공중을 달리는 스카이 캡슐이 마음과 눈을 신선하게 자극한다.


세상사, 모든 것은 그 쓰임이 다하면 세상 밖으로 밀려나고, 버려지고, 저절로 사라지고, 아예 잊히기도 하고, 더러는 새로움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늙은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데리고 나와, 예전에 이곳은 이랬단다.. 한들.. 아이에게는 허공에 떠 도는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의 설화 같은 옛 이야기일 뿐이고, 할머니에게는 되돌아올 수 없는 지난 시간일 뿐이고, 추억은 사라진 것에 대한 또 다른 추억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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