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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May 31. 2022

천촌(天村)


하늘 아래 첫 정거장, 눈은 말끔히 치워져 있다. 거기다 먼 길 수고롭게 온 객을 위함인지 햇살은 유난히 따뜻하다. 역사(驛舍)는 문이 닫혀있다. 창에 얼굴을 갖다 대고 역사 안을 본다. 맞이방 가운데 오래된 난로가 보인다. 난로 속으로 석탄을 수시로 넣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석탄이 타면서 매캐한 연기로 콜록콜록 기침을 한참 했던 기억도 난다.     


난로 위에는 엄마가 싸 준 양은 도시락을 올려놓았다. 난로가 발갛게 달아오르면 따뜻함에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그때 그곳에는 아버지 혼자였다. 아버지는 역장이면서 직원이었고, 제일 높은 사람이면서 제일 아래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자주, 어린 나를 데리고 출근했다가 마지막 기차를 보내고 다시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우리 집은 동네 작은 탄광촌 안에 있었다. 아버지는 광부가 아니고 철도원이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탄광촌 안에 있는 작은 집에서 살았다. 탄광촌 말고는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쭉 뻗어 있는 낡은 철로를 본다. 이제는 철로 위로 기차는 다니지 않는다. 차단기가 보이는 곳으로 갔다.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저 차단기 너머다. 그때 아버지는 청색 흰색 깃발을 들고 계셨다. 내 나이 11살 때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남들이 할아버지라 부르는, 오른쪽 다리를 조금 절룩거리는, 지독히도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오십이 넘은 나이에 낳았다. 그리고 육십이 넘어서 돌아가셨다. 네 살 정도까지는 기억이 거의 전무 하니,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6년 정도라 해 두자. 아니면 네 살 전의 기억도 그 속에 묻어있는지는 모르겠다.     


<하늘 아래 첫 정거장>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역사 앞 벤치에 잠시 앉았다. 아버지와 엄마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 아버지가 산 나이보다 십 년을 더 살고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엄마 아버지보다 더 노인이 되어있다. 지금의 나를 아버지와 엄마가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혼자 비식 웃는다.     


먼 길을 달려왔다. 노곤하다. 눈이 살포시 감긴다. 아, 기적소리가 들린다. 깜빡 졸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이미 올라탈 사람은 다 탔나 보다. 기차를 놓칠 뻔했다. 얼른 뛰어가 열려있는 열차 문으로 서둘러 올라탔다. 타자마자 이내 문이 닫힌다. 후유~ 놓칠 뻔했다. 객실 안으로 들어가 좌석을 찾았다. 열차 칸 안에는 나밖에 없다. 코로나가 갈수록 극성을 부리고 정부에서는 연일 여행을 삼가라, 모이지 마라를 떠들어대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한갓진 것을 즐기는 나에게는 그래도 나쁘지 않다.     


가방 안에서 읽던 책을 꺼냈다.옆 좌석에 놓아두고 잠시 차창 밖을 본다. 열차가 달릴수록 차창 밖 풍경이 좋다. 산을 지나고 강을 지나고 작은 내도 지난다. 살짝 창문을 연다. 청정한 자연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 나에게로 온다. 공기의 달콤함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깨끗하다 못해 눈부신 플랫폼이 눈에 들어온다.     


서둘러 내릴 준비를 했다. 이렇게 작은 역에서는 열차가 정거하는 시간이 아주 짧다. 플랫폼에 발을 디디고 나서 주위를 둘러봤다.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은 나 혼자다. 역명이 눈에 확 들어온다. <天村驛> 그 옆에 <하늘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풋~ 웃음이 터졌다. 요즈음 사람들은 카피에 천재다.     

<산수화 마을> <코스모스 마을> <산타마을>등 지역의 특성을 살려 역명과 마을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자기 마을을 홍보한다. <天村>도 그런 마을의 한 곳일 것이다.      


‘나, 지금 하늘나라에 온 거야?’ 

혼자 킥킥 웃어본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플랫폼을 둘러 보고 역사 밖으로 나갔다. 오 ~ 마을이 눈부시도록 깨끗하다.     

‘정말 하늘나라 맞네.’     

쭉 뻗은 외길 도로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길도 너무 잘 닦아 놓았다. 노곤했던 몸이 어느새 깃털처럼 가벼워진 듯하다. 내가 생각해도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하다. 도로 저쪽에 하얀 집들이 보인다.    

 

불현듯 딸과 함께 여행했던 안달루시아의 하얀 마을 ‘미하스’를 떠 올렸다. 온통 하얀 벽돌과 하얀 지붕, 평화로웠던 마을, 마을에는 온통 나이 든 사람들만 있었는데.. 여기 와서야 딸과 함께 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이 하얀 마을을 봤으면 딸도 분명 ‘미하스’를 떠 올리며 좋아했을텐데.  

   

오래 전 북촌 코스모스 역이란 곳을 다녀왔다. 그곳에도 <여기서부터 코스모스 마을입니다.>라고 적혀있더니 이곳도 마을 초입에 <여기서부터 하늘마을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무지개색으로 한 자 한 자 채색되어 있다. 간판이 멋있다 생각하며 소녀처럼 들떠서 발걸음도 경쾌하게 타박타박 걸어 들어갔다. 하얀 관리복에 무지개색의 모자를 쓰신,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멋진 아저씨가 나오시더니 티켓을 보자 한다.     


"아, 티켓을 구입해야 하나요? 이 마을 유료인가요?“      


생각해 보니 관광지에는 마을도 티켓을 끊어야 하는 곳이 있었다.      


”오실 때 끊으신 기차표만 있으면 됩니다.“     


순간 아, 내가 기차표를 끊었나?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있다. 후유, 나이가 드니 조금 전 있었던 일도 깜빡할 때가 있다. 기차표를 보신 관리 아저씨가 가방을 맡겨 놓고 가란다. 보안을 철저히 하는구나. 생각하며 가방을 맡기고 핸드폰만 손에 들었다. 아저씨가 손을 내밀며 폰도 달라고 하신다.     


”사진 찍으면 안 되나요?‘     

“이 마을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 단호함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핸드폰도 아저씨 손에 얹어 드렸다. 그때서야 관리실 뒤편 정자 아래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도 정자가 군데군데 있고, 정자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듯하다. 허긴 아무것도 안 하면 어때, 여기야말로 그냥 휴식, 쉼,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을. 부러운 눈으로 잠시 그들을 봤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그리고 돌아가실 기차 놓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곳에는 하루 1편밖에 기차가 운행되지 않습니다.”     

“아, 그런가요? 하루 1편밖에 기차가 없군요.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루 한 편밖에 기차가 없다는 것을, 관리 아저씨에게 듣고 살짝 긴장했다. 그런 것도 꼼꼼하게 체크 하지 않고 오다니, 나도 참, 하며 대책 없이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한심해서 피식 웃었다.  잠시 있으니 솜처럼 몽실몽실한 구름 문이 열린다. 자동문이다. 문밖과 별반 다르지 않은 깨끗한 길이 쭉 뻗어 있고, 저만치서 여러 길로 나뉘어진 골목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동네를 사람들이 많이 모르나 보다. 여행객이 한 사람도 안 보인다. 몇 발짝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아, 구름 문이 있었는데 안 보인다. 어머나!! 순간, 나 못 돌아가는 거 아냐? 덜컥 겁이 났다. 


아이들에게 정식 작별인사도 나누지 않았는데.. 아직은 아이들과 영원히 헤어질 준비는 되지 않았다. 다시 문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고 하는데, 그때서야 구름 문이 보인다. 구름 문이 구름과 하나가 되어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놀랬던 내가 우스워 웃는다. 이제 부지런히 마을을 돌아봐야지, 에고, 사진을 못 찍어서 섭섭다. 얼마나 멋진 풍경인데,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될 텐데. 이 나이에도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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