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회와 반성, 그리고 변명

by 칠십 살 김순남

22년 나를 낳아주고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사랑해주고 키워 준 친정 엄마도 병원에서 보내드렸고, 친정엄마보다 20년이나 더 많은 45년을 함께 산 시어머님의 마지막도, 병원에서 떠나보냈다, 시간이 한 참을 지나도 내 행동에 대한 후회와 죄스러움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정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끝까지 내 집에서 그분들의 마지막을 함께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후회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어머님을 집으로 모셔야겠다 싶어서 모시고 왔다.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어머님의 병수발, 먹거리, 신음소리에 몸도 마음도 피로해졌다. 어머님의 병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친척, 이웃, 일 나가는 시간 동안 집으로 와서 엄마를 돌보는 시누이들의 발걸음. 그들에게는 당연히 해야 할 병문안이며, 환자에 대한 애정이며 보호였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그 자체가 환자보다 더 큰 피로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렇듯, 모든 감사함의 이웃의 행동도 나에게는 굴레의 시간이었다고 느껴졌으니, 나는 정말 못된 사람이다.


시집가서 45년, 평생을 함께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친정엄마를 22살에 여위었으니 날 낳지 않은, 냉정히 말하면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남편의 어머니란 사람과 산 시간이, 나를 낳아 지극 정성으로 키워 준 친엄마보다 20년이나 더 길다. 꼭 피붙이어서가 아니어도 이쯤이면 친정엄마보다 더 돈독한 유대관계가 이루어진다. 옛말에 신랑 시집은 갈수록 힘들고 시어머니 시집은 갈수록 편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같은 여성으로서의 애환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 말은, 시어머님의 마지막을 소홀히 했다 해서 내가 시어머니에게 애정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병원으로 모시는 것이 더 합리적인 현실이라 말하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이 그런지도 모른다.


어머님은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다. 그 절대적인 헌신을 가벼이 생각지 않는다. 과한 헌신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도망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님도 고백한다. 그러나 어머님은, 과한 헌신과 희생은 어머니로써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그 희생에 도망치고 싶어 하는 며느리의 마음을 이해 못하셨다. 어쩌면 그런 자신의 헌신에 무조건 감사하고 복종해야만 한다는 시어머님의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감사해야 할 어머님의 헌신이 오히려 내게 큰 상실감을 주기도 했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은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자유로웠는지도 모른다. 내 나이 66세. 내 인생의 진정한 자유로움은 그 나이에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한다. 참 잔인한 말이다. 한 인간이, 그것도 40년을 한집에서 함께 살은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서야 내 인생이 진정 자유로웠다고 말할 수 있다니, 혹자는 패륜이라고 말하기도 하겠다. 그러나 시부모님과 평생을 함께 산 사람들은 일부 나의 용기 있는 감정의 표현에 공감의 표를 살포시 눌러 주시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뒷날, 어머니는 원망스러운 마음을 가졌을것이다. 내가 지네들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를.. 이렇게.. 여기다가..라고.. 자식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고, 배신감마저 드셨을 거다. 어디 우리 어머님만 그렇겠는가? 병원으로 와서 계시는 어머님 아버님 중 많은 분이 그런 생각을 조금은 하시지 않으실까?


어머님과 함께 입원해 계셨던 분 중에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셨던 할머님이 계셨다. 그 할머님은 우리 어머님을 부러워하셨다. 병원과 가까이 있는 딸과 아들, 며늘이 매일 번갈아 왔다 갔으니 말이다. 내가 갈 때마다 할머님은 어머니 병실을 찾아와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우리 며늘아 한테, 내 잘 있다 말해 주소” 안부를 물어보지 않는 며늘에게 먼저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할머니셨다. 나는 한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아도 그 집 며느리를 잘 모른다. 그냥 스치듯 지나가면서 보았을 뿐이다. 많이 젊은 분이셨다. 맏며느리도 아닌 막내며느리라고 하셨던 것 같다. 무슨 사정이 있어서 장남과 살지 않고, 막내와 사셨는지 모르겠지만, 막내며느리는 그녀대로 막내가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억울한 심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어머님을, 아버님을 요양병원에 모신다고 해서 자식의 가슴에 부모에 대한 효심이 없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물론, 지극히 효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팽개치고 부모님 곁에서 올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전체 인구에 몇 %에 해당이 될까? 이렇듯, 효심과는 별개로 노인은, 아프면 가야 할 곳이 있게 되어버렸다. 그나마 현대에 와서 이런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옛, 고대인들의 노년기는 정말 불행했다. 굳이 다른 나라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장이란 것이 역사적인 사실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한다. 지금의 요양원은 옛 고려장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나이와 육신,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나이와 육신, 자식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나이와 육신. 그래서 젊은이들 뒤로 사라져야 하는 장소라면 맞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대책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좀 더 나은 시스템으로, 환경적인 요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좀 더 좋은 환경으로 바뀔 것이란 믿음도 있다. 어떤 환경이 되어도, 어떤 사회적인 시스템이 있어도 나는 불평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평생 헌신해 온, 내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에게 사회의 시스템에 맞추어 대접을 해 드렸으니까. 나도 그분들의 뒤를 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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