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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Mar 25. 2016

<얼룩묻은 가방도 반품 못해서 뿌듯한 바보>

착한 소비자라고 혼자 만족합니다.

얼마 전, 동생이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누나. 가방 사고 싶은 거 하나 사."

"응? 가방? 진짜? 와! 나 안 그래도 가방 하나 사고 싶었는데!"

"응. 하나 사. 누나 이번에 나 워커랑 옷도 사줬잖아."

"아~ 에이~ 그건 그냥 누나가 동생한테 사준 건데 뭐~그걸 또 쑥스럽게~괜찮은데~

(대박! 얘가 알고 보니 예의가 있는 애구나!)

진짜 사도 되는 거야? 미안한데... 동생한테 가방 사주라고 하는 건 좀..."

"진짜 사. 사줄게."


우와! 내 동생 최고!!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가방을 주문했고,

총알보다 느리면 큰일 나는 요즘 배송은 역시 빨랐다. 도착한 가방은 마음에 쏙 들었다.


"와~ 완전 모양도 크기도 누가 봐도 누나 취향이네. 그래도 사진보다는 낫다."

(누나 취향이라는 말. 좋은 뜻이겠지? 헷...그래..좋은 뜻일 거야...)

"이 작은 가방에 뭐가 들어가기는 해? 이게 가방이야? 인형 가방 아니야?"

(응... 물건이 들어가니까 아마 가방이지 않을까...?) 사준 사람이니까 그저 속으로만 생각..


근데 이게 뭐지???

예쁜 흰색 가방에 검은색의 얼룩이 묻어있었다.

이럴 수가... 꽤 크다. 많이.


"동생아! 이거 봐. 얼룩이 너무 커. 어떡하지?"

"어? 진짜네? 새 가방인데 왜 이렇지?"


 새하얀 가방에 검은색 얼룩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부모님께 얼룩을 보여드리니 두 분은

마치 맞춘 듯이 같은 말씀을 하셨다.

"얼룩 묻었다고 가방에 물건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교환하고 그러면 그 판매자들이 얼마나 귀찮고 고생이겠니? 별것도 아닌 걸로 교환하고 반품하고 힘들게 할 텐데,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넘어가자. 그냥 가방은 물건 넣고 들고 다니면 되는 건데, 그냥 교환하지 말고 들고 다녀."

...........

또, 그 말씀에 나는 또 바로 설득되어 버렸다.

'하긴.. 판매자분들도 엄청 바쁘고 배송 때문에 힘들 텐데 괜히 귀찮게 하지 말고 들고 다니자.'


 그래서 그 얼룩 묻은 가방을 잘 들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지인을 만났는데 그 언니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황당하고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럼 이 얼룩 묻은 그대로, 판매자가 귀찮을까 봐 그대로 들고 다닌다고?"

"응~ 아니 그게, 부모님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시는데 맞는 말씀 같아서.

뭔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같고 미안하잖아.."

"무조건 교환해야지. 돈 주고 사놓고 뭘 그걸 눈치를 보고 그래. 그건 그냥 소비자의 권리야.

나 같았으면 절대 가만히 안 있었다. 한바탕 했어. 진짜 너답다. 아휴.."

.......

'진짜 너답다'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진 않았다.

그냥.... 그 이후로도 검은 얼룩이 묻은 채로 계속

들고 다닌다. 쭉.


 왜냐면?

교환하면 안 되니까. 좋은 게 좋은 세상이니까(?)

어찌 됐든, 그 가르침을 받고 자란 나는 아마 반품이나 교환은 하지 않는, 자기 권리도 주장 못하는

좀 많이 부족한, 바보 소비자(?)가 될 거 같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근데, 기분 나쁘거나 내가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 솔직히 말하면 좀 뿌듯하기도 하다. 부모님 말씀대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한 거 같아서...(?)

그래도, 앞으로도 이렇게 부족한 소비자로 뿌듯하게 살아갈 생각이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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