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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Mar 12. 2016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말의 무시무시함에 대해

'이게 다 너 걱정돼서' 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가능해져 버린 말들.

“다 너 생각해서,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의 무서움.



 짐작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꾸준히 들어왔을 그 말.  

글쎄. 아마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듣지 않았을까?

간단한 예로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기본적인 건 익혀놔야 나중에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거야. 

엄마가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대충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이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생각해서 하는 말’의 위력은 가히 무시무시할 정도라서 듣는 이의 단점을 꼬집는 독설부터 시작해서 

심장을 후벼 파는 아픈 말까지 다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니까 우선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니까, 좋은 의도니까.

그래서 듣는 사람은 사실 뭐라고 대답하기도 어렵다.

좋은 마음으로 잘되라고 해준 말에 혼자 발끈해서 화내는 이상한 사람이 되기에 십상이니까. 

알고 보면 아주 그냥 무서운 말이다.


 그 말들은 보통 10대에게는 성적, 수능, 대학이 대부분인데(다시 말해 그냥 공부. 공부. 공부) 

20대부터는 좀 다양해진다. 취업부터 연애까지.

30대는 진짜 좀 힘들어지는 거 같다. 

아직 30대의 ‘잘되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해서 막 얘기할 수는 없지만, 명절에 사촌오빠들을 보며 생각했다. ‘아, 힘들겠다.’ 

그냥 다 필요 없고 ‘결혼’ 하나로도 나머지가 우스워지는 수준이다. 

그리고 40대부터는 이야기하기가 좀 민망하다. 내가 뭘 안다고. 

음, 아마 자녀, 돈, 회사생활에 대한 말이 아닐까 싶다.


(아, 그리고 이건 나이 때에 상관없이 언제나 빠지지 않는 말이라 안 넣었는데 외모에 관한 말은 태어나서부터 시작이고 대부분은 끝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우선 ‘생각해서 하는 말’은 365일 매일 듣는 말들인데, 굳이 뭐 명절에 어른들의 말씀까지 가지 않아도 그냥 지인끼리도 별생각 없이 다들 쉽게 주고받는다. 당장 주위만 둘러보더라도 그렇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대충 이정도다. 

1. 연애에 대한 조언 (“그 남자는 너를 안 좋아한다니까? 그냥 헤어져. 내가 무조건 확신하는데 걔는 처음부터 너한테 진심 아니었어.”)
2. 외모에 대한 조언(“넌 살이 너무 쪘다.” 혹은 “너처럼 마른 건 오히려 보기 안 좋아.”)
3. 취업에 대한 조언(“너처럼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는 평생 백수 되는 건 한순간이다.”)


 생각해서 말하는 이들에게는, 취업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다이어트 때문에 운동하느라 힘들다거나, 결혼을 위해 열심히 맞선을 보고 있다던가 하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나보다. 

그냥 지금, 취업 못 했다는 거. 살 못 뺐다는 거. 결혼 못 했다는 거. 결과만 중요한 거다. 


 이런 기억도 있다. 같은 학원에 다니던 통통한 체형을 가진 언니에게 학원 선생님이 '걱정'해주었던 일.

  "A야. 이거 진짜 내가 진심으로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너 그러다가 진짜 시집 못 간다. 살 좀 빼. 웬만한 남자보다 체격이 더 크잖아. 진짜 내가 너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야. 살 좀 빼. 아무도 안 데려가. 너 몇 키로 정도 나가니? 남자인 B보다 더 나가지? 이렇게 살찐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니? 휴. 기분 나빠할 게 아니야. 다른 사람은 신경도 안 쓸 텐데, 난 너 진짜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야."라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던 그 선생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니의 체형에 왜 그렇게까지 자기가 안타까워하고 신경썼는지 참 궁금하기까지 하다.

진짜 무슨 그 언니의 다이어트 성공 여부에 돈내기라도 걸었나? 싶을 정도로.)


 상대의 기분도, 마음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 발언에 너무 안절부절못하며 언니의 표정을 살피던 나와 다르게 오히려 언니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괜찮냐고 묻자 이런 말은 하도 들어서 적응됐다며 해탈한 표정으로 웃던 언니. 

마음이 아팠다. 화내는 것보다 더.    


 그래. 우선은 좋은 의도라는 거. 듣는 사람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사실 그건 듣는 사람, 그러니까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문제 아닐까? 취업이 안 되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괴롭고 노력 중인 사람은 바로 듣는 사람, 자신이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너 왜 취업 안 하니? 너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야. 노력 좀 해.” 하는 말은 오히려 노력 중인 사람을 힘 빠지게 할 뿐이니. 


 내가 살을 빼야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매일 보는 회사 부장님? 1년에 한두 번 보는 친구? 아니면 혹시 자기 자신? 다이어트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사람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 받는 사람도 아마 자기 자신일 거다. 그런 상황에서 “넌 살이 더 쪘네. 살 좀 빼라.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말은 아마도 그리 크게 도움은 안 될 거다. 


 연애 문제도, 취업문제도, 결혼문제도 그렇다. 그 누구보다 당사자가 제일 강하게 느끼고, 고민하고, 애쓰고, 노력하고 있는게 당연하다. 그런 상황에서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는 거. 조금은 더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건네야 하는 말 아닐까? 

어쨌든, 다른 이가 봤을 때도 보이는 '문제'라는 건, 자신에게는 고민스럽고 힘든 부분인데 콤플렉스, 혹은 약점을 너무 간단하게 말하는 건 그리 좋지 않은 듯하다. 


 물론, 시작은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도 맞다. 

그래. 잘 됐으면 해서, 진짜 그냥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인데, 왜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지적받는 것과 항상 스트레스 받으며 힘들어하는 부분을 남에게 지적받는 것은 충격의 차이가 크다. 

안 그래도 자신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부족한 점을, 굳이 한 번 더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걱정되어서 진짜 고쳤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면 좀 더 부드럽게 했으면 한다. 

"취업 못 해서 평생 백수로 살래?" -> "너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일을 안 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야."
"세상에 반이 남자인데 그런 남자 왜 만나니? 너 진짜 바보야? 답답하다." -> "넌 사랑받아 마땅한 여자야. 많이 힘들면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보는 건 어때?"  
"그 몸으로는 시집도 못 가겠다. 살 좀 빼." -> "지금도 충분히 예쁘지만, 건강을 위해서도 살이 조금 빠지면 훨씬 예쁠 거 같아." 

 이렇게 말이다.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충고. 듣는 이의 마음을 후벼 파는 독설은 한 끗 차이다. 

생각해서 하는 말이, 정말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듣는 이가 '생각하게 하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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