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스템을 전 세계로 Ctrl C + Ctrl V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래 초미의 관심사는 미중 무역전쟁이었다. 무엇을 했길래 이를 전쟁이라 부르는가? 미중 무역전쟁의 구체적 행동은 중국에서 생산되어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3월 22일 중국산 수입품 500억 달러치에 관세를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18개월간 압박과 합의를 반복하며 중국을 들었다 놨다 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및 지식인들은 이를 보호무역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대북 정책을 긍정하는 측에서조차 반세계화적 조치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비판했다. 그만큼 국가 간 교역과 왕래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진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경쟁한 결과 지난 100년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겪었고, 반면 자유무역을 통해 전 세계가 번영했고 가장 평화로운 시대가 찾아온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세계화의 역사는 아직 30년에 불과하다. 아마 1985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평생에 가까운 기간이겠지만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는, 심지어 한 세기의 역사에 있어서도 길다고 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후 시작된 냉전시대보다도 짧은 기간이다. 세계화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세계화가 무엇이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이 장에서 살펴보자. 세계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아주 많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 시대에 규제 철폐가 진행된 것 그리고 미국 경제를 위협하던 일본 경제가 90년대 초반에 무너진 것도 세계화의 기반을 닦은 사건이지만, 가장 핵심적 요인은 ‘냉전시대의 종말’과 ‘통신기술의 발달’ 두 가지다.
세계화를 한 마디로 설명하면 국가 간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남북한 사이에는 철조망이 있지만 유럽에서는,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독일이나 스위스로 건너가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출입국관리소도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도 있다. 이를 테면 정보의 이동을 막는 온라인 방화벽 같은 것을 말한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페이스북, 유튜브 혹은 해외 콘텐츠 유입을 차단하는 국가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상당히 많은 국가에서 이러한 장벽이 사라졌다.
이러한 흐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첫 번째 사건은 바로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다. 이는 이듬해 동서독 통일로 이어졌고, 동시에 동구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개혁개방을 가속화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장막이 걷히자 소비에트 연방의 한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1991년 마침내 소련은 위성국가들의 독립을 인정하고 해체에 합의했다. 서구의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계획경제 시스템에 승리한 것이다. 둘로 나뉘었던 세계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급격하게 통합되기 시작했다.
세계화를 촉진하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었으니 바로 통신기술의 발달이다. 내가 일곱 살이던 1994,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한 대 있었는데 우리는 그걸 486 컴퓨터라고 불렀다. 마우스도, 윈도우도 없었고 전원을 켜면 검은 바탕에 영어로 된 흰 글자만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당시 친구들 중에 집에 컴퓨터가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듬해인지 그 다음 해인지 새 컴퓨터를 샀는데 하늘색 배경 위에 창문 그림과 Window 95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컴퓨터에 설치된 게임과 한글타자를 즐겼던 것이 기억난다. 97년 무렵에는 유승준 씨의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광고로 기억에 남은 ADSL 인터넷을 설치했다. 대부분의 평범한 가정에 컴퓨터도 없었던 1994년부터 평범한 가정에서 컴퓨터를 비롯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진 것이 불과 3년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같은 시기에 등장한 휴대전화 역시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까마득히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겨우 아이폰이 생기기 10여 년 전의 일이다. 나의 세계에서는 휴대폰이 등장한 건 1995년쯤의 일이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삐삐라는 물건이 생겨 저녁마다 아버지의 귀가 시간을 체크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는데, 그로부터 채 2년이 되지 않아서 삐삐가 휴대전화로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90년대 중반은 삐삐, 시티폰, 휴대전화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기술변화 속도가 빨랐던 것이다.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이 기기들이 일반 가정에 상용화되었을 때가 90년대였으니 그 발전은 80년대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서구의 시스템을 전 세계로 확산하는 분위기에서 통신기술은 이를 부채질했다. 그 결과 1990년대에는 이동의 자유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물건, 사람, 정보(지식), 자본 이 네 가지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앞에서 세계화란 장벽을 허무는 것이라고 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물건, 사람, 정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