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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Feb 12. 2019

감기의 나쁜 점

두 번째:아프지는 않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속상하다

늦겨울 찾아온 감기는 왠지 더 야속했다. 한겨울에도 안 걸렸는데 뭔가 방심한 게 아니냐는 사람들의 속 모르는 잔소리에 머리 아픈 증세까지 추가되었다. 하나도 도움이 안 되었다. 원인을 알아냈다고 해서 감기라는 것은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며칠 전 마음의 감기가 온 날부터였다. 마음이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습기 없이 잘 환기하고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는 좋은 습관은 있어서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에도 옮은 적이 없었는데 그런 걸 사람들이 기억해줄 리 만무하다. 재채기가 잦아지더니 코가 훌쩍거렸다. 조금 성가시긴 했지만 아픈 곳은 없어서 그냥 자고 일어나면 나아지겠거니 했다. 다음날부터는 목이 붓고 따끔거렸다. 불안감이 스멀거렸다. 그날 점심은 육개장이었는데 미각이 둔해져 매운맛이 목구멍을 지날 때면 아픈 건 둘째치고 기침이나 나와서 몹시 불편해졌다. 아프게 되면 불편한 것도 알게 된다.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 것이 떠올라 잠시 반성도 해본다. 몸 관리를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면역력이 약한 것도 못 기르는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퇴근할 때 즈음되자 불편한 것보다 아픈 것이 앞지른다. 저녁을 먹고 바로 약을 먹었지만 저녁 일정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니 죽을 맛이었다. 5분 정도 찬바람 부는 기다리는데 평소와 다르게 참을성이 바닥나려고 했다. 저녁 모임에서 따뜻한 차 한잔과 안부인사를 대접받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내내 머릿속에는 내내 ‘내가 이렇게 아픈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배려심이 없나’ 하는 불만스러운 생각뿐이었다. 겨우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니 바로 널브러졌다. 출근하기도 싫었다. 밤에 먹는 감기약은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내일 아침 자리 털고 일어나고 싶지만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씻은 듯이 나았다’라는 말은 기적 같은 일인 것이다. 고작 감기이지만 이렇게 종종 감기를 앓는다. 마음부터 상하니 몸이 상하고 몸이 상하니 마음이 상한다. 이것이 감기의 나쁜 점이다.


그런 감기가 마음 쓰이는 누군가에게 갔다니 내가 아프지는 않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속상하다. 그것이 감기의 두 번째 나쁜 점이다. 내가 감기 걸릴 때보다 더 예민하게 증상에 반응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재채기를 하거나 훌쩍거리면 나도 하지 않는 건강 습관을 열거하기도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안부인 사는 감기의 동태를 살피는 것으로 한다. 감기의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감기는 스스로 걸렸다고 시인하는 것으로 인정이 된다. 아무리 아프고 콜록거려도 끝까지 감기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감기에 당첨되고 나면 만나는 시간을 쉬는 시간으로 돌려줘야 하고 겨우 만난다고 해도 옮는다며 뽀뽀를 할 수도 없다. 옮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움츠러드는 것, 이것이 세 번째 감기의 나쁜 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지금 얼마나 아픈지 묻거나 감기 때문에 겪은 불편한 일이 있으면 푸념을 들어주는 일이다. 타인의 가벼운 고통에 관심을 갖는 일은 꽤나 나르시시즘적이고 그래서 달콤하기까지 하다. 유자차나 핫팩을 손에 쥐어주면 귀엽긴 하지만 별 도움은 안된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이 돌아오면 민망할 때가 있다. 밥 대신 먹으라며 죽을 포장 해서 갖다 주는 일은 오버일 때도 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비타민 링거나 직장 반차를 기프티콘으로 세 개씩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길어지는 감기에는 네 번째 나쁜 점이 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어떤 약이 잘 듣는지 휴식은 취했는지 물어보는 것도 며칠이 지나면 줄어든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나도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으므로 무뎌지는 것이다. 그렇게 방치한 감기는 봄이 와도 코에서 목으로 목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귀로 돌아가며 몸에서 나가지 않다가 돌연 더 큰 병이 되기도 한다. 큰 병이 되어서야 다시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는다. 다른 병이 되어 치료를 받는 비용과 그간 소소하지만 기침이나 코막힘 으로 불편을 겪은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속상한 이야기를 들어도 나는 “그러게. 처음에 걸렸을 때 완전히 나을 때까지 약 사 먹으라고 할걸”이라고 할 뿐이다. 한 번씩 이 말이 마음에서 체증처럼 걸릴 때가 있다. 작고 잠깐인 어려움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그것이 길어지니 상대의 아픔도 불편도 그러려니 덮어 둔 것이다. 감기처럼 지나간 인생의 변곡점들이 떠올랐다. 기억도 안 나게 스치기도 했고 일주일을 차도 없이 끙끙 앓아눕기도 했다. 큰일이 아니라며 덮어두다가 몇 달 후 복구할 수 없이 변형된 모습에 당황한 적도 있었다. 그 시작은 감기처럼 작은 증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그런 일들을 생각할 때면 마음 한 부분이 떠내려가는 듯 서늘해진다. 고작 감기인데 생각할수록 심각해졌다. 감기의 다섯 번째 나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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