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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r 11. 2019

벚꽃 에디션

그날의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들의 유일한 낭만이었다

따뜻한 봄기운이 차가운 겨울을 물러가게 한다는 건 힘이 나는 말이라는데 오늘 낮은 한순간에 여름의 숨결까지 느껴졌다. 겨울을 보낸 적도 없는데 여름이 온다는 초조함. 거기에 점심에 집에서 나오며 '아 장복산은 한순간인데 피기 시작했으면 어쩌나', '원동 매화는 다 떨어진 걸까', '저번 주에 공곶이를 가볼걸 그랬나' 이런 내일이면 사라질 걱정에 괜히 또 초조해졌다. 차를 사고 나서 봄이면  평생 간 적 없는 꽃구경을 몇 번 가기도 했는데 기실 교통대란 가운데 나만의 스폿을 찾겠다고, 찾았다고 들떠서 떠들어댔던 내가 오늘따라 더 바보같이 느껴진다. 코트를 입고 왔어야 한다며 떨다가도 안 추운척하면서 사진 백장 찍던 일도 있었다.
사람들과 꽃들을 정신없이 번갈아 보던 그 날의 시간처럼 지우고 싶은 시간, 돌아가고 싶은 시간, 사실은 즐겁지 않았던 시간이 마음속에서 교차한다. 그 수많은 허영의 반복 속에서도 지금에 사 남은 진심의 시간이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벚꽃 에디션이 벚꽃보다 먼저 피기 시작했다. 벚꽃은 냄새가 없는 꽃이다. 사람들은 단지 그 분위기에 취하는 것뿐이다. 에디션이 붙는 물건들에 우리는 낭만을 느끼지만 물건을 보고 떠올리는 그날의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들의 유일한 낭만이었다. 벚꽃 이름 붙은 물건을 사고서야 벚꽃을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나는 올해 어디서 누구와 또 꽃구경을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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