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잔잔함
누군가는 여유라고 부르는 평일 한낮의 시간들을 안다. 으리으리한 빌딩에도 가고 스러져가는 골목에도 가고 하루는 유쾌했다가 다음날에는 똥 밟은 기분이 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굉음도 침묵도 없는 그 잔잔함에 몸부림쳐도 작은 파도 하나도 만들 수 없다는 것에 숨이 막힌다.
영화 <얼굴들>에 나온 골목들은 꼭 내가 아는 장소 같았다. 내가 아는 읍성들 재개발 구역 식당 관공서... 도시의 구조상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꼭 내가 겪은 듯한 일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처럼 느끼게 한다. 그 배경들 일상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영화가 끝난 한참 후에 문득 진수의 말에 최면이 걸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는 얼굴을 잘 기억하거든요. 얼굴만 보면 어떤 사람인지 다 알아요. 선생님 저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얼굴들(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