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마음씨와 게으른 마음씨는 때때로 닮아 있다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춘다. 수도관 뚜껑 테두리에 자란 잡초들이 유독 무성하다. 저렇게 클 때까지 자란 것은 뽑은 사람이 없어서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잡초를 남김없이 뽑는 동네를 생각한다면 이곳이 동광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저 키 높은 홀씨들이 싹이 나고 꽃을 피우는 동안 사람들은 밟지 않게 피해 다녔을지도 모른다. 고운 마음씨와 게으른 마음씨는 때때로 닮아있다.
배수관 뚜껑을 비집고 나온 것 같기도 하고 그 틈에서 나름의 생활을 꾸려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한 두 개가 아닌 여러 개가 자란다. 헐거운 틈을 조이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작지만 곁을 내어 준 것 같기도 하다. 정리하지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방치하는 것인지 보존하는 것인지. 지저분한 것과 수더분한 것도 닮은 것일까. 오래된 도시에서 나의 올드한 생활을 그려본다.
풀잎은 왜 나는 지천에 널려 있는 평범한 존재냐고 투정하지 않았다.
-검불에도 향기가 있다, 정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