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베이비 독일 장난감 여행
아이를 기르다 보면 프뢰벨, 가베, 은물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듣게 되죠. 같은 이름의 출판사도 존재하고, 유아용 교구로 유명하기도 하고요. 프뢰벨은 유치원을 세계 최초로 만든 창시자이기 때문에 유치원의 어원도 독일어 (Kindergarten) 예요.
독일 바트 브랑켄브루크에 위치한 프뢰벨의 생가는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방문해 봤어요. 이번 저의 독일 장난감 여행에서는 단순히 장난감과 그 회사들을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놀이와 교육의 근본에 대한 저의 고민을 풀고 싶었어요. 독일의 유치원들도 방문해보고, 장난감의 역사를 짚어보는 여정 속에서, 독일의 교육 사상가인 프뢰벨의 교구가 전시된 이 박물관은 지나치기 힘든 곳이었죠. 이 박물관의 1층은 가베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어린이들의 플레이룸과 자그마한 숍이 있었고 2층-4층은 프뢰벨의 생가를 보존해 놓은 구역과 프뢰벨의 업적을 담아놓은 공간이 있었어요.
이곳 이사벨 관장님께 직접 프뢰벨의 교육관과 가베에 대해 강의를 들으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프뢰벨은 말과 글로만 유아 교육에 대해 떠들었던 것이 아니라, 직접 70명의 아이들을 혼자 돌봤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너무 인원이 많아서 주로 강강술래 놀이를 했다고... ㅋㅋㅋ) 프뢰벨은 평소 어린이들이 선천적으로 선하고, 신이 내려준 아이들의 능력을 어른들이 잘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단체 돌봄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 같아요. 저는 밀키 한 명 기르기도 힘든데 말이죠.
프뢰벨은 정말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는데, 웬걸, 유아교육이 아니라 자연과학과 공학, 건축학, 물리학, 철학 등의 과목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볼 때 수학적인 교구가 많았어요. 게다가 얼마나 꼼꼼한지, 다양한 교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기록하고 개발한 노트가 많이 보였어요. 아트 놀이를 연구하며 책을 쓰고 있는 저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평생 써놓은 방대한 자료가 있었죠. 아이들과 매일매일 여덟 개의 큐브로 1008가지의 모양을 찾아낸 그의 정신 (+체력)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동에 대한 교육관 자체가 없었던 당시, 프뢰벨은 평생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고 장난감을 개발하고, 심지어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제시했다고 해요. 당시에는 부모가 아이랑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아무런 가이드가 없던 시대였죠. 게다가 프뢰벨이 볼 때 아이들은 노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지만, 어른들은 몰라서 '놀이 안내서'를 만들었다고 해요. 부모 교육 정보가 차고 넘치는 요즘이랑은 많이 다르죠?
이사벨 관장님이 직접 1~3단계 가베를 시연하며 천천히 오래오래 설명해 주셨어요. 1가베라 불리는, 엄마들이 신생아랑 놀 때 쓰는 천 도구는 널리 알려져 있죠. 원은 세계, 지구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무지개색으로 색깔도 익히고 애착관계도 형성할 때 도움을 준다고 해요.
2가베에는 직육면체와 원이 있는데 이를 마구 회전시킬 때 달라지는 모양도 인지하고 기초적인 수학과 도형을 배울 수 있다는데, 다 필요 없고 아이들이 너무 산만할 때 주목시키는 '마법의 용도'라고 하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 있었어요.ㅎㅎㅎ
제 3가베는 여덟 개의 큐브로 모양을 조금씩 변형시키면서 이게 뭔지 유추하는 활동을 하는데, 큐브들의 댄싱 Dancing of the cube 라고 표현하더군요. 기하학적이고 아름다운 모양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수십가지의 예시들를 직접 그려 놓은 것이 보였어요. 교육에 대한 프뢰벨의 집념이 인상적이죠. 큐브의 움직임을 달리 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도형을 만들고, 산수도 배웠다고 해요.
초보 엄마 시절, 밀키도 잠시 가베를 잠시 가지고 놀았어요. 이대 영상학과로 전과하기 전 저는 교육학 전공이었고, 2년간의 전공 수업에서 간간이 접한 그의 명성을 떠올렸죠. 솔직히 말하자면 깊이 있는 정보를 가지고 선택했던 장난감은 아니었어요. 교육열이 특히 높은 한국과 일본에서 이 가베를 유아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같이 여기기 쉽지만 프뢰벨의 고향 독일에서는 교구의 조상같이 여겨지고 있었어요
프뢰벨이 생각하는 유치원의 의미는 파라다이스 가든이라고 해요. '가든'이 들어간 이유는 Garden = nature 자연에 대한 연결을 의미한다고 해요.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을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당시 아이들 모두 자기 텃밭이 있었다고 해요.
프뢰벨이 정의한 바로는 아이들이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고, 잘 성장하고, 자연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곳이 바로 유치원이라고 해요. 유치원생인 밀키를 기르는 입장에서 프뢰벨의 교육관 중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특히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놀이의 즐거움을 충분히 알고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부분이 인상깊었죠. 우리 아이들이 놀이를 배제한 채 학습의 세계로 너무 일찍 노출이 되는 점은 염려스러워요. 박물관 방명록에 인삿말을 남기면서, '놀이는 유년기의 가장 순수하고 영적인 인간 활동이다'라는 프뢰벨의 명언을 다시 한번 떠올렸어요.
그림작가 김우영
밀키베이비라는 필명으로, 가족의 따뜻함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카카오 UX 디자이너이자 밀키의 엄마. 저서로는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엄마입니다만, 2017>, <우리 엄마 그림이 제일 좋아. 2019> 이 있다. 그림 전시와 아트워크숍을 종종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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