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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키베이비 Jul 24. 2020

'일회용' 그림쟁이 되지 않으려면 - 똑똑한 콜라보 법

그림작가 김우영의 드로잉 처방전 (3) 


어떤 형태로 일을 할 것인가? 

활동 경력이 쌓이고, 내 채널의 구독자도 점점 늘면서 콜라보 제안이 오기 시작했다. 기업과의 일러스트레이션 콜라보는 그림 작가에게 창작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을 벌어다 준다. 그런데 여러 기업과의 미팅에서 느꼈던 것은 기업이 생각하는 '그림 서비스 제공자'의 정의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크게 아래 세 가지다. 



기업 담당자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이 셋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러스트레이터나 작가에게 프리랜서 업무를 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브랜드 상품 이미지로 이모티콘을 제작해 달라던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달라는 식. 여기서 승인을 하면, 프리랜서 업을 하게 된다. 나는 디자인 업을 처음 시작할 무렵 이런 일들을 다수 했다. 결과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양도해야 할 수도 있으며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즉 콜라보를 잘못하면, 한번 쓰고 버려진다. 



좋은 콜라보를 고르는 기준 

No Japan 운동이 시작될 때 즈음 일본계 회사인 큰 브랜드에서 연락이 여럿 왔었다. 나는 거절했지만 해당 브랜드가 몇 주 후 다른 작가와 콜라보를 하는 것을 보았다. 기회를 놓쳤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돈을 벌 수 있다고 아무거나 덥석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 브랜드와 콜라보를 하면서 나는 콜라보에 대한 나름의 두 가지 기준이 생겼다.


하나는 콜라보 결과물에 밀키베이비가 그렸음이 드러나느냐 아니냐다. 때론 작가 이름을 노출해 주지 않고 그림체도 바꿔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나는 서로 윈윈 하는 케이스가 좋다. 내가 쌓아온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밀키베이비를 노출해 주는 것이 마케팅에도 좋다. 예를 들면 이삭토스트의 비치 타월 콜라보나 베베숲 물티슈 아트 에디션 콜라보의 경우, 내 작가명을 전면에 나타내 주고 내 그림의 메시지를 잘 담아서 프로모션을 했다. 사람들은 기존의 상품의 가치에 '아무 그림'이 아니라, 그림 + 메시지를 인식하며 더 효과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밀키베이비 X 이삭토스트 비치타월 여름 프로모션


두 번째는 계약을 철저하게 하느냐다. 계약을 대충 했을 경우 뒤처리는 매우 골치 아프다. 계약기간과 계약금, 수정의 빈도까지 세세하게 계약서에 쓴다. 소액인 경우는 모르겠지만 '뭘 그런 것까지 하나... 그냥 약식으로 하자' 고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꼭 문제가 생겼다. 클라이언트가 큰 기업일 경우에도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해야 뒷 탈이 없다. 


밀키베이비 X 베베숲 물티슈 아트에디션



다음 콜라보를 부르는 비결 

내게 영업을 하지 않고도 굵직한 콜라보 요청이 들어오는 시기는 내가 콘텐츠를 쌓아 올리고 2년쯤 후였다. 이미 책도 한 권 내고, 조금씩 크고 작은 기업과 콜라보를 하고 있을 때였으니 저절로라고 하기도 어렵다. 운 좋게 들어온 기회도 내가 감당할 수 있어야 다음 일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닷컴과의 인연은 우연찮게 들어왔다. 삼성은 거대 기업이라 컨펌 단계도 많고 이를 수행하는 광고 에이전시 담당자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광고주가 원하는 바를 에둘러 전달하는 게 아닌, 정확히 전달해주고 나는 그 작업을 빠른 시간 안에 완성도 있게 마감해야 했다. 


나는 삼성전자의 신제품 그랑데 건조기 (이후 여러 전자제품)를 홍보하기 위해 이벤트 상품으로 나눠줄 수 있는 웨딩, 육아 카드를 20장씩, 총 40장을 그리는 첫 작업을 맡았다. 내 그림이 아닌듯한 그림이 아니라, 밀키베이비 가족 캐릭터로 스토리를 담아 그리는 것이기에 미팅도 수월했다. 그러나 기간은 점점 축소되고, 모든 사람이 전화와 카톡, 문자로 분단위로 움직이면서 정신없이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밀키베이비 X 삼성 그랑데 건조기 프로모션 육아/신혼 카드



늘 제시간에, 혹은 제 시간보다 조금 빨리 작업물을 전달하자, 담당자분께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다. 마케팅에 대한 사람들의 호응도 좋았다고, 순식간에 웨딩, 육아 카드가 동이 났다고 담당자분께 연락을 받았다. (이 카드 세트는 전량 품절되었다.) 삼성 제품 홍보를 위한 다음 일이 연달아 들어왔다. 한번 단추를 잘 꿰니, 신뢰가 쌓였다. 삼성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절 가전 프로모션도 스케치를 전달하고, 콘셉트를 잡기까지 빠르게 합의를 보고 진행할 수 있었다.


삼성디지털플라자 내 비치된 밀키베이비 일러스트 



콜라보, 그 이후 


대학 졸업 후 프리랜서로 세상에 나왔을 때, 똑같은 일이 들어왔다면 매 단계가 지금보다 훨씬 벅차게 느껴졌을 것이다. 현재 이 일들이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짬밥'일 것이다. 미팅과 계약, 비용 협의 및 콘셉트 도출 회의 등은 내가 디자인 에이전시, 스타트업, 대기업을 모두 거치면서 이런 일의 진행을 십 년간 수도 없이 체득한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콜라보했던 브랜드 중에 안 좋게 끝난 브랜드는 신기하게도 단 한 군데도 없고, 지금까지도 담당자들과 가끔씩 연락을 하며 지낸다. 가끔 콜라보했던 브랜드들을 다시 홍보해주기도 한다. 나와 콜라보한 상품이 홍보가 너무 잘 되어, 그 인연으로 내 책의 출간 계약까지 이어진 출판사 (한빛 출판사) 도 있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내 좌우명이 콜라보 그 이상의 것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늘 깨닫는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BPAj8ZlD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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