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은 우리는 지역 종합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의사는 "정확한 진단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근육 긴장성 두통일 수도 있으니 체외충격파 물리치료부터 해보자고 한다. 뭔가 구체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그때는 조금 안도했던 것 같다. "결국 나아질 거야"라는 희망을 어디선가 끌어오고 싶었던 시기였다.
치료실에 누워 있는 남편을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벽을 등지고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특별한 풍경도, 위로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멈춘 듯한 기다림의 정적만이 내 옆에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치료. 정해진 시간에 병원에 가고, 자세를 바꿔 눕고, 기계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시간을 견디고, 그렇게 돌아오는 일상. 일주일이 지나고 그다음 주가 됐지만, 남편의 상태는 처음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두통은 계속됐고, 밤마다 잠을 설치고, 식사량도 줄어든다. 가끔 "숨이 가쁘다"는 말을 꺼낼 때면 나도 모르게 손끝이 싸늘해지곤 했다.
사람은 기대하다가 실망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무표정해진다. 그 시기의 나는 지치지도, 아프지도 않다는 듯 무덤덤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사실 그 무표정 안쪽에 수많은 감정이 웅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아무 말 없이 남편이 의자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아졌다. TV를 켜놓고도 보지 않았고, 휴대폰도 자주 내려놓았다. "좀 어때?"라는 질문에 "그냥 그래"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면 그마저도 점점 힘이 없어진다.
나는 그제야 느꼈다.
아픈 건 몸 하나가 아니라 삶 전체라는 걸.
나아지지 않는 상태가 계속 반복되면 사람은 점점 말이 줄고, 기대가 줄고, 감정조차 줄어든다. 그게 무너지는 시작이었다. 가끔, 조용히 앉아 있는 남편의 옆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냥 이 상태가 평생 간다고 상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두려운 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더 크게 말했다. "다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더 기다리면 괜찮아져." 그 말이 그를 위한 위로였는지, 나를 위한 주문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 곁에 두는 말 >
: 혹시 나아지지 않는 상태를 버티듯 지낸 적이 있나요? 그 시간 동안, 당신의 말은 점점 줄어들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