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지 않는 사랑에 대하여
'떠나보낸다'는 말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가늠해 보는 예행연습 같다.
아이는 여전히 집 안에 머물고, 틈만 나면 엄마를 찾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반응하는데 마음은 벌써 그 너머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언젠가는 학업을 위해, 자신만의 꿈을 위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위해 집을 떠날 것이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결코 오지 않을 거라 믿는 건 부모의 순진한 착각일 뿐이다.
하지만 요즘의 '떠나보냄'은 짐을 싸서 나가는 거창한 이별이 아니다. 일상의 아주 작은 틈새로 먼저 찾아오는 낯선 순간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학교 생활이나 듣고 싶은 과목을 두고 아이가 스스로 결정을 내렸을 때, 엄마의 오랜 경험보다 자기 자신의 서툰 판단을 믿겠다고 말했을 때처럼.. 그 선택이 엄마가 생각한 길과 달라도 이제는 입을 꾹 다무는 연습을 한다. 예전 같으면 기어이 한마디를 보탰을 텐데.. 조금만 알려주면 덜 헤맬 거라고, 조금만 도와주면 지름길로 더 빨리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게 사랑이고 관심이라고 착각했으니까.
이제는 안다. 앞에 놓인 돌부리를 미리 치워주고 길을 닦아주는 일이 아이에게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직접 부딪혀보고, 실수하고, 다시 선택해 보는 시간조차 오롯이 아이의 몫이라는 것을. 그래서 도와줄 수 있어도 한 걸음 물러나고, 정답이 빤히 보여도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친구 관계, 사람을 보는 기준에 대해 예전만큼 쉽게 말을 얹지 않는다. 훗날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이라는 선택 앞에 설 때, 그 결정의 기준이 엄마의 시선이 아닌 아이 자신의 단단한 삶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떠나보내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학업을 스스로 정하게 두는 일, 관계에 섣불리 간섭하지 않는 일, 인생의 큰 결정들을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는 일. 이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마음을 조금씩 옮기는 연습이다. 이 연습은 아이를 멀리 밀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온전히 믿어주기 위한 과정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서 완전히 뒤로 물러나거나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아이의 시야를 가리는 앞자리에 서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필요할 때는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는 거리,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조용히 지켜본다.
떠나보내는 마음은 아이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그저 사랑의 형태를, 아이의 성장에 맞춰 바꾸어가는 과정이다. 아직 서툴지만, 오늘도 그 조용한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손을 놓아주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더 깊은 사랑으로 모양을 바꾸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