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안색은 마음이 아니라 통장에서 나온다

by 은하


돈 이야기를 꺼낼 때면 본능적으로 단어를 고르게 된다. 너무 솔직하면 속물처럼 보일까 봐, 너무 조심하면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적당한 거리에서 말을 아낀다. 한동안은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족이 우선이지 돈은 그다음 문제라고 점잖게 순서를 매기며 살았다. 하지만 삶의 파도를 몇 번 넘고 나면 결국 인정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돈이 있어야 비로소 마음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큰 부자가 되어 세상을 호령하고 싶은 대단한 야망 때문이 아니다. 남들에게 재력을 과시하고 싶은 허영 때문도 아니다. 그저 매달의 고정비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예상치 못한 지출에도 일상이 휘청이지 않는 그 적당한 여유가 마음을 가장 빠르게 안착시킨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울 뿐이다.








따박따박 들어오던 고정 수입이 사라진 뒤, 돈은 늘 머릿속 한편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할 일을 떠올릴 때도, 아이의 학원비를 결제할 때도, 몸이 조금만 휘청여도 가장 먼저 스치는 질문은 늘 비슷했다. "이번 달은 괜찮을까." 이 서늘한 질문 앞에서 성격이 예민한 탓이라며 자신을 탓하는 건 무의미하다. 경제적 결핍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opr8wkopr8wkopr8.png




그래서 이제는 돈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돈 때문에 불안해하는 마음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쪽을 택한다. 매일 아침 다이어리를 펼쳐 오늘 해야 할 일과 지출해야 할 숫자를 끄적이는 행위는 나만의 의식이다. 수입이 들쭉날쭉한 카페 운영의 흐름을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공포는 실질적인 대책으로 변한다. 실체를 아는 불안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다. 때로는 필요에 따라 아르바이트나 계약직 같은 선택지를 저울 위에 올려두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밖으로 나가 일하는 것을 커리어의 후퇴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을 '가치'가 아닌 '안정의 도구'로 보기 시작하자 시야가 넓어졌다. 내가 선택한 노동으로 얻은 수익이 일상의 평화를 지탱한다면, 그 어떤 일도 초라할 수 없다.




돈이 충분하면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원래의 내가 조금 더 편안해질 뿐이다. 아이들에게 괜히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되고, 몸의 통증을 억지로 참지 않아도 되며, 하루의 선택지 앞에서 조금 더 여유롭게 숨을 고를 수 있다. 결국 돈을 벌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은, 나와 내 가족의 고유한 색깔을 지켜내고 싶다는 다짐과 맞닿아 있다.




오늘도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할 일과 숫자를 정갈하게 적어본다. 어제보다 조금 더 명확해진 숫자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미건조한 나열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오늘의 안녕을 약속하는 가장 든든한 설계도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주는 안정이 있어야만 비로소 마음의 다음 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숨기지 않는다.









화, 금 연재
이전 01화1화. 돈,건강,가족-무엇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