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해? 지금이 가장 벌어야 할 때 아니야? 아이들도 다 컸잖아."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마다, 어김없이 따라오는 질문들이다. 그 질문들 앞에서 한동안은 말이 막혔다. 애써 설명하려고 하면, 괜히 나 자신을 변명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게으르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전업으로 일하지 않는 것처럼 오해받을까 봐 주저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의 선택은 변명이 아니라, 나만의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첫째, 아이들이 아직 완전히 손을 놓을 시기는 아니다. 학교 일정, 학원 픽업, 갑작스러운 공백들까지. 하루의 리듬은 여전히 아이들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 리듬을 무시한 채 내 일정만 밀어붙이다가는, 결국 모든 것이 삐걱거릴 거라는 걸 경험으로 안다. 엄마라는 역할에서 오는 크고 작은 빈틈들을 외면한 채, 나만의 시간만을 고집할 자신은 없었다.
둘째, 체력도 중요한 계산 대상이었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나에게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여러 번 겪어봤다. 돈을 벌기 위해 나를 혹사시키다가 결국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리는 악순환. 그런 무모한 도전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것은 결국 더 큰 불안을 낳을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풀타임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 나에게 가장 무리가 덜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택했다. 시간을 조금 더 잘게 쪼개고, 일의 형태를 유연하게 두며,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조정할 수 있는 방식. 이 선택이 언제나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현명한 길임을 믿는다. 풀타임이 아니라고 해서 일에 대한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더 자주 점검하게 된다. 지금 이 선택이 계속 유지 가능한지, 혹시 수정해야 할 지점을 지나고 있는 건 아닌지. 이처럼 나를 객관적으로 응시하는 과정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힘이 된다.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 일하는 시간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을 닫아두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은 아이들과의 리듬, 내 몸의 상태,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의 지속성을 함께 놓고 계속해서 계산해보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처럼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에게 맞는 균형을 찾아가는 이 계산이 나를 덜 불안하게 만든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대에 휩쓸리지 않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풀타임을 선택하지 않은 가장 솔직하고 단단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