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다 똑같아, 마음이 예뻐야지."
어른들이 흔히 던지는 이 위로 섞인 말들은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외모에 유난히 집착하거나 화려하게 꾸미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스스로 못나 보인다고 느끼는 날이면 마음의 허리춤이 툭 하고 풀려버리곤 했다. 그 차이를 이제는 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 앞에서 작아지는 그 느낌이 싫었던 것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은 평소보다 말수가 줄어든다. 타인의 시선을 공연히 의식하며 눈치를 보게 되고, 당당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조차 한 박자씩 늦어진다.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사실이, 야금야금 하루 전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한동안은 이런 모습이 속물처럼 느껴져 자책하기도 했다. '이 나이에 무슨 외모 타령이야, 아이들도 다 컸는데.'라며 예뻐지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른 적도 있다. 하지만 욕구를 억누를수록 위축감은 더 선명해졌다. 스스로를 외면하던 날들을 돌이켜보면, 대체로 일도 관계도 선택도 전부 흐릿했다. 자신을 당당하게 마주하지 못하니 세상 앞에서도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못나 보이면 위축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점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나니, 스스로를 돌보는 태도가 한결 솔직해졌다. 외적인 만족은 단순히 치장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장치에 가깝다.
-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게 해주는 장치.
- 자신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
-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팽팽하게 당겨주는 최소한의 장치.
완벽한 미인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를 보았을 때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 보이는 상태를 위해 애쓰는 시간은, 결국 자신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오늘도 거울 앞에 선다. 대단한 변신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스스로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의 정성을 쏟는다. 타인의 기준에 맞춘 아름다움이 아니라, 당당하게 서기 위한 이 작은 노력이 불안을 덜어준다. 위축되지 않고 스스로를 똑바로 응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루도 선명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