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내 손에 남은 건 오직 한 번뿐인 퇴직금뿐이라는 사실을. 매달 정해진 날짜에 어김없이 들어오던 숫자의 안온함이 사라지자, 마음의 바닥이 자주 출렁거렸다. 통장의 잔액을 계산하고 다음 달을 미리 걱정하는 일은 금세 무거운 일상이 된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다시 준비하는 것이었다. 무자본 창업을 검색하고, 각종 강의를 듣고, 성공 가능성을 치밀하게 계산했다. 하지만 화면 속 정보가 쌓여갈수록 역설적으로 내 발걸음은 더 무거워진다. 통장의 숫자는 그대로였고, 머릿속만 복잡한 설계도로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무리 정교한 지도라도 직접 걷지 않으면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당장의 결핍이라는 것을. 월급을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일단 블로그를 열었다. 지금 다시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투박하고 어설픈 글들이었지만, 그 서툰 시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블로그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은 예상치 못한 길로 이어졌다. 카페 운영을 배우게 되고, 처음으로 광고 제안을 받고, 내 힘으로 일궈낸 몇만 원의 수익이 통장에 찍히던 날의 감각을 잊지 못한다. 직장에서 받던 월급에 비하면 아주 작은 숫자였지만, '내가 직접 만들어낸 돈'이라는 실감은 전혀 다른 종류의 용기를 주었다. 그 숫자는 단순히 돈이 아니다. 움직이면 반드시 무언가 남는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이런 깨달음은 몸으로도 전해진다. 매일 조금씩 시작한 스트레칭이 무슨 변화를 줄까 싶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삐걱거리던 고관절 소리가 잦아들고 팽팽하게 솟아있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작지만 분명한 변화. 삶은 이토록 정직한 움직임 끝에 아주 천천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제는 안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렸다면 나는 아직도 검색창 앞을 서성이고 있었을 것이다. 시작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직접 발을 들이야 비로소 나만의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어디인지, 나에게 맞지 않는 방식은 무엇인지. 막연했던 불안이 구체적인 고민으로 바뀌는 순간, 비로소 문제는 해결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온다.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시도만큼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퇴직금은 언젠가 줄어들겠지만, 무언가를 실행하며 몸으로 익힌 감각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완벽하지 않은 채로 움직인다. 대충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속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속도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조금 덜 완벽하게, 하지만 조금 더 자주 시도하는 것.
시도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그 뻔한 진리가, 오늘의 나를 조금 덜 불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