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획을 세우는 데 꽤 능숙한 사람이다. 노트를 펼쳐 일정을 적고, 깔끔한 표를 만들며, 이상적인 루틴을 정리할 때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계획이 완벽을 지향할 때 시작되었다.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만 첫발을 떼려 했고, 충분한 준비가 끝나야 움직이려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실행은 늘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완벽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 같았고, 그 실패 뒤에 다시 일어설 힘이 내게 없을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늘 안전한 계획이라는 울타리 안에 오래 머물렀다. 15년 넘게 몸담았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나서도 한동안은 계속 준비만 했다. 무자본 창업을 검색하고, 각종 강의를 듣고, 성공 가능성을 치밀하게 계산했다. 하지만 화면 속의 정보가 쌓일수록 내 발걸음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블로그를 열었다. 잘 될 거라는 확신도, 거창한 체계도 없었다. 그저 '일단 써보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서툰 시작 끝에 다음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운영하는 카페나 글쓰기 플랫폼에서의 활동도 사실 철저한 계획의 결과라기보다, 일단 던져본 시도들이 엮여 만들어진 결과물에 가깝다.
너무 계산에 매몰되면 발이 묶이고, 반대로 너무 즉흥적이면 지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계획을 세우되, 그 계획에 갇히지 않으려 애쓴다. 이것은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대충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느라 정작 실행에 써야 할 에너지를 바닥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시작은 작게 하고, 해나가면서 고치고, 고치면서 배우는 쪽을 택한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때는 끝까지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막상 발을 들이면 의외로 단순하게 풀리기도 한다. 막연히 두려웠던 지점들이 실제로는 해볼 만한 일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건 오직 실행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전리품이 된다. 조금 틀어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아예 멈춰 서 있는 것보다, 조금씩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쪽이 훨씬 건강하다. 예전보다 내가 덜 불안하게 사는 이유는 삶에서 불안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서툴더라도 시도해 본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이다.
안 해본 일은 형체 없는 괴물처럼 두렵지만, 한 번이라도 해본 일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완벽하지 않은 채로 움직인다.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속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속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