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는 작가와는 다르다고 한다.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니 문학적 재능을 굳이 따질 필요 없고, 방송을 예술로 보지 않으니 창작을 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는 작가를 보면 “적당한 선에서 끝내라”는 말로 독려한다. 그것이 독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들 말해 왔다. 하지만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시청자들도 같은 감정을 느끼길 바라면서 온 힘을 다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18년 가까이 방송을 해오면서 정말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정확하게는 만들었다고 하고 싶지만 내 이름으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참여했다는 정도로만 말하는 것이 어울리는 것 같다. TV 프로그램도 할 때는 죽도록 고생해서는 결국은 PD의 프로그램으로 그 공이 돌아가고 상도 거의 담당 PD가 받는다. 그리고 작가에게는 수고했다는 한마디가 끝인 것 같다. 지금껏 상을 받은 프로그램도 꽤 많았으나 난 상을 받으러 같이 가본 적도 그 트로피도 나에겐 없다. 어떤 경우는 아예 상을 받은 사실조차 나는 모르고 있기도 하다.
뭐 상이 중요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걸 했다고 내 이름 석 자 남기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10초도 안 되게 끝나버리는 스태프 스크롤만 방송 중에 나의 허기를 달랜다. 근데 누가 스태프 스크롤을 쳐다보고 있으랴.
TV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다. 라디오는 대본을 읽은 MC의 것이 된다. 방송뿐만이 아니라 일반 글을 써도 주인은 다른 사람이다. 구청에서 일할 때도 열심히 쓴 기고문은 담당 부서로 넘어가 적당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고 되곤 했다.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만큼 서러운 것도 없는데, 홍길동이 서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던 건지 100번 이해가 간다.
그래서 내 글을 적고 싶다는 생각에 2016년 소설에 감히 뛰어들었다. 지금까지의 글과 호흡도 다르고 방향도 완전히 다른 문학작품이다. 물론 1년여 가까이 걸려 자료조사 및 인터뷰를 하고 스토리텔링을 시작해 소설이 나오기까지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아직 내가 부족하구나 하는 것도 느꼈지만, 이미 시작한 것 끝을 내야 했다. 그렇게 나온 중편소설 ‘환상의 섬’은 내 이름 ‘하미라’가 찍혀 있으나 너무 부족한 작품이라 감히 자랑스럽게 말도 못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청에서 사업비를 받아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스토리텔링 했던 거라 결국 저작권은 나에게 없다.
캘리그라피를 써서 방송용 타이틀도 넘기고 나면 결국 그것은 방송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나 혼자만 아는 나만의 작품, 종종 그런 것이 씁쓸해진다.
누구나 내가 죽는다면 이름은 남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는 것 아닐까. 나 역시 그렇다. 이왕이면 잘 살고, 멋지게 살아내고 싶다. 그래서 멋진 여자였다 기억되고 싶다.
그래도 그나마 기분 좋은 건 국내 유일의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 가면 나의 소설을 줄여서 약 50m의 소방도로 벽에 타일벽화가 그려져 있다. ‘스토리텔링 작가 하미라‘라는 나의 사인과 함께. 이름을 아주 진하게, 제대로 남기긴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