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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직업병

 어느 일이든 직업병이 없는 직업이 있겠는가. 방송작가 역시 엄청난 직업병들이 있다. 24시간 내내, 365일 내내 아이템 고민과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찾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사연이 있고 특출한 사람, 아니 특출하지 않아도 된다. 새롭거나 혹은 조금 신기하거나 그런 사람, 사물이라면 된다. 음식도 신메뉴, 최근 트렌드 메뉴, 혹은 특이한 메뉴 등등 방송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잠을 잘 때도 꿈속에서 생각하기도 한다. 잠시도 뇌가 쉬는 시간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한 번씩‘오늘은 놀자!’하면서 어디로든 떠난다. 마음을 비우고 그렇게 훌쩍 떠나는 날은 타지역의 새로운 아이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기는 이런 것도 있네? 그럼 울산에도 있을까?’

  ‘이 아이템이랑 저 아이템이랑 엮으면 대박이겠다’

  ‘저런 사람은 이런 콘셉트로 방송을 하면 재미있겠는데? 섭외해볼까?’    


  이게 방송글쟁이의 일상이다.     

  이런 공과 사의 불분명한 경계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만날 때도 발현된다. 친구랑 재미있게 수다를 떨다가도     

  “야, 우리 회사에 이런 부장님 계시는데 진짜 대박이지? 회사 마치면 바로 뭐라더라? 주짓수? 그런 거 배우러 간대. 나이가 50이 다 되셨는데도.”    

  “그 부장님 성함이 뭐야? 연락처는? 왜 주짓수를 배우신대? 언제부터? 집은 어디야? 가족은? 촬영 가능하실까?

  “진짜 말을 못 한다. 만날 방송 생각밖에 안 하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이번에 ○○동에 요거트집이 생겼는데 거기 사람들 줄 서 있더라.”    

  “거기는 어디라고? 요거트집 가게 이름은? 사람들이 왜 맛있대? 먹어봤어? 모양이 달라? 특이점은? 사장님은 젊어? 인터뷰하러 가봐야겠다. 너도 손님 입장으로 인터뷰 좀 하자”    


  세상 모든 것을 아이템화 시키는 것은 아마 방송작가들의 주특기일지도 모른다. 살기 위한 몸부림 정도. 그렇게 해서라도 한 주 분량의 새로운 아이템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난 친구의 친구라도 찾아가겠다.   

 

  사람들에게 아이템 할 만한 거 있으면 알려주세요-라고 해도 사람들은 이것이 아이템이 되는지 아닌지 모른다. 본인으로서는 기발하고 이런 아이템이 세상 어디에 있겠나 싶지만, 알고 보면 이미 방송을 했던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에 의한 전달보다는 그들과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그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그리고 아주 치명적인 직업병은 몸으로 온다. 오래 앉아 있으면서 생기는 허리 디스크나 목 디스크는 자세를 제대로 하지 않는 나의 개인적인 병이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다 아픈 건 손목 정도. 마치 아기 낳고 몸조리하는 산모처럼 손목에 다들 보호대 하나는 끼고 일을 하는 듯하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직업병이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심하게 아픈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오래 하면서 생겨난 나이테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혀 몰랐다면 생길 수도 없는 직업병이 그 일을 알기 때문에, 했기 때문에, 그것도 오래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니까.     


  지금도 누군가를 보면 아이템부터 생각하는 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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