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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김영철도 안다

  “네, 방송작가입니다”    

  “우와~ 그럼 연예인 많이 알아요? 누구 알아요? 아이유도 알아요?”    

  

  사실 사람들은 방송국에 다닌다고만 해도 다들 묻는 이야기다. 연예인 누굴 봤는지, 누구랑 개인적으로 아는지, 언제 또 보는지 등등. 생각만큼 모든 방송국이라고 해서 연예인을 많이 보고 많이 아는 건 아니다. 특히 지역의 방송국에는 행사 때나 오는 게 연예인이다.    


  그래서 행사를 여러 번 맡다 보면 연예인을 보고, 연예인 매니저 하고 소통을 하니 연예인을 안다고 하기도 모호할 거다. 나는 그래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아는 연예인 꽤 있지~ 하고.     


  앞서 언급했던 ‘365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은 코너마다 연예인이 고정으로 들어갔다. 집을 고쳐주는 코너에는 가수 박상철 씨가 고정이라 몇 년을 혼자 프로그램을 맡아서 하고 있다 보니 한 두 달에 어쩌다 한 번씩 만나도 점점 친해져서 박상철 씨 매니저가 내 결혼식때 정말 예쁜 벽시계를 선물로 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많은 인맥을 남긴 프로그램은 ‘김영철의 퀴즈만세’(퀴즈로 만나는 세상의 줄임말이었다) 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개그맨 김영철 씨는 울산 서생 출신으로, 당시 영어 독학으로 공부하는 이미지가 높아진 때라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퀴즈 프로그램에 MC를 맡게 되었다. 나는 그 퀴즈 프로그램의 작가였고, 문제를 내는 일과 MC에게 대본을 주었고 울산의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다 전화를 걸어서 출연자 섭외에 나섰다.

  

  “울산에서 하는 청소년들 대상의 퀴즈 프로그램이구요. 개그맨 김영철 씨 잘 아시죠? 김영철 씨가 MC예요. 상금은 최다 우승 시에 최대 3천만 원까지~ 대단하죠?”    


 이 멘트가 시작이었던 걸 보면 나름 개그맨‘김영철’씨에 대해 자부심이 꽤 높았다. 같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생각보다 진지하고, 생각보다 멋진 모습들에 깜짝 놀라기도 했으니까. ‘생각보다’라는 말에 영철 오라버니가 기분 나빠하실 수도 있겠지만, 참 좋은 사람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빨리 좋은 짝을 만나서 장가가는 모습을 봤으며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이 진하해수욕장에 아구찜도 먹으러 다니고 꽤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 울산에 오면 가장 신나는 곳이 지금 프로그램이라는 말에 우리는 모두 영철 오라버니의 성공을 기원하며 살고 있다. 지금 참 잘 풀려서 예전보다 성장하시고, 유명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나오시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괜히 마음이 뿌듯하곤 한다.   

 

  ‘김영철의 퀴즈만세’로 고등학교에 선생님들께 전화를 돌리면서 학창시절 담임선생님과도 통화한 적이 있고, 고등학교 때 아주 무서웠던 영어 선생님과도 통화가 된 적이 있다. 그땐 매일 발표를 시키고, 답을 해야만 그 분단(지금은 이런 말을 모를 수도 있겠다)에 점수를 받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점수가 제일 높은 분단은 칭찬을, 점수가 제일 낮은 분단은 숙제가 떨어졌다. 그리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맞추면 ‘어버이 점수’라고 해서 실질적인 점수는 되지 않으나 칭찬은 조금 받는, 지금 생각하면 웃긴 점수 제도도 있었다. 어릴 때는 그런 거 하나하나가 겁도 나고, 목숨 걸 일이었나 싶다.    


  어쨌든 그 당신에는 그림자만 봐도 벌벌 떨었던 선생님이었는데, 통화할 때 목소리가 너무나 상냥해서 상상도 못 했다. 그 영어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성함을 듣고서야 혹시 아니냐고 여쭈면서 나의 출신학교를 말하고 제자였노라 말했더니, 매우 반가워하셨다. 그리고 꼭박 나에게 존대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작가님”이라고 칭하시면서 말이다.    


  그리고 퀴즈만세로 맺은 또 다른 인연은 첫 3주 우승자였다. 학생들은 그래도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우등생들만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당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한 고등학교의 약간의 괴짜 우등생이 출연을 한 거다. 선생님들이 이 녀석이 공부는 잘 하고 그런데 살짝 괴짜다우니 여기나 나가보라는 심정으로 보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 정성헌 군과 인연이 되어 3주 연승이라는 첫 기록으로 퀴즈만세의 역사에 길이 남은 학생이 됐다. 당신 3연승해서 천만 원 정도 받았던 것 같은데 나중에서야 툴툴거리며 세금이 22%나 된다며 받은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녀석은 ‘미라교’ 추종자였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작가님 대단해요.”

“작가님, 멋있어요.”

“전 평생 미라교, 작가님은 교주”    


  이러면서 주변 작가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4연승에 실패해 안타까웠지만, 방송국으로서는 심장이 떨렸으리라. 이 녀석은 거의 17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연락이 종종 온다. 똑똑했던 만큼 서울 유명 대학에 들어갔다가, 공부도 꽤 오래 하다가 이건 내 길이 아니라면 박차고 뛰어나와 다시 한의대를 갔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에 있는 한 한방병원에서 원장님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울산에 내려와 내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해보고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으시다며 약을 좀 드셔야겠다고 말하는데 난 왜 믿음이 안 가는지. 웃겼다.    


  꽤 잘 나가는 원장님인데도 내 눈에는 ‘김영철의 퀴즈만세’을 촬영할 때 ‘미라교’를 추종하던 철부지 고등학생으로만 보이나 보다. 이제 성헌 군이 30살도 넘었으니 좋은 짝을 만나 장가갔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혹은 자신의 병원이 생겼노라 자랑하는 연락을 받고 싶다.     


  성헌이도 김영철 씨랑 종종 연락이 되는 것 같다. 나름대로 자랑스러워하면서. 김영철 씨와는 몇 년 전 싸이월드에서도 우리는 일촌이었고, 인스타그램에도 서로 팔로워다. 페이스북에서도 김영철 씨 계정이 뜬 걸 보고 “저 미라 작가인데, 기억하실까요?”라고 댓글을 남겼더니 “당연히 알지~~~ 예쁜 미라 작가님.”이라는 답이 오가고 또 신났던 적이 있다.    


  사실 가수들은 개인적 친분은 없다. 워낙 바쁜 사람들이라 매니저와 통화하고 와서 대기실에 있을 때 잠시 MR CD 받으러 무관심한 척 시크하게 가는 것과 “다음 차례입니다. 준비하세요” 정도의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니까. 일이 아니었으면 사인도 받고 사진이라도 찍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의 최고의 연예인 인맥은 개그맨‘김영철’씨다. 난 김영철도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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