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기억 1
1장
“오늘은 저쪽에 있는 기관배로 가자!”
가난한 어촌 마을의 여름은 늘 그렇듯, 바닷가에서 하루를 보낸다.
장생포 앞바다는 그래서 우리의 놀이터였다. 어느 정도 물놀이가 따분해질 쯤이면
어느 놈 하나가 먼저 툭 내뱉는다.
“저기에 아저씨 좀 무서운데? 저번에 올라가다가 잡혔데이~”
“아이다. 안 들킨다. 가자!”
그렇게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기관배(엔진이 있는 큰 배를 그 때는 그렇게 불렀다)에 가서 다이빙내기를 하는 거다. 배 갑판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높여가면서 말이다. 이 다이빙에는 꼭 지켜야하는 룰이 있었다. 바로 배치기다.
사실 나는 배치기에 약했다. 친구들 따라서 헤엄이야 어떻게든 치고 다녔지만 유독 다이빙은 너무 무서웠다. 거기다가 물에 배부터 닿아야 이기는 배치기는 겁 많은 나에겐 곤욕이었다. 그래도 겁쟁이 소리는 듣기 싫어서 꾸역꾸역 갑판에 올랐다. 아래로 보는 바다가 빙빙 돌았다. 시커먼 게 나를 잡아 삼킬 것만 같았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뻔 했다.
“못하겠나? 사내새끼가 그것도 못하나? 빙신새끼”
매번 이것저것 트집 잡아서 날 괴롭히지 못하면 안달이 나는 용수가 비웃어댔다. 순간 온몸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뭔가 간질간질, 그러면서도 아주 쐐하게 나를 자극 시켰다.
“누가 못한다고 했나? 할거다!”
그렇게 배 갑판에서 시작된 배치기 다이빙은 하나씩 위로 올라가 어느새 마지막 선장실에 이르렀다. 대부분 나가떨어지고 용수랑 둘만 남았다. 사실 어떻게 지금껏 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악으로 버틴 것 같다. 앞도 보이지 않고 그냥 까맣게 변해버린 바다뿐이다.
“빼액- 빼액-”
멀리서 고랫배의 고동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점점 아득해지고 까만 바다는 더 가까워진다. 잠시 정신이 혼미해져서 애써 눈을 떠본다.
‘고래다!’
까만 바다 속에 무언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고래다. 분명히 고래다.
‘여기까지는 고래가 올 리가 없는데.. ’
포구에서 작살 맞아 죽어온 고래는 수없이 봤지만 이렇게 살아있는 고래가 내 앞에 나타난 건 처음이었다. 점점 다가오는 그 검은 고래를 덤덤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무섭지 않았다. 그냥 따뜻하게 느껴졌다. 자꾸만 잠이 와서 눈이 감겼다.
‘고래는 따뜻하구나....’
그 날 나는 배치기다이빙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모양이다.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꽤 오래 물속에 있었는지 어른들이 내가 죽었다고 아부지한테 전했다고 했다. 손이 귀한 집안에 하나뿐인 손자 죽는다고 할매도 내 옆에 몸져누우셨다. 난 그냥 꿈꾼 것 같은데 다들 난리가 났었나 보다.
“아부지, 고래를 봤는데요. 여기 앞에 시커먼 고래가 있었어요.”
“뭐라 하노? 여 바로 앞에 우예 고래가 있노? 이제 정신차리라~”
“진짜로 봤는데, 고래도 만졌는데~”
“그저께 장포수 아저씨가 억수로 큰 고래 잡았다 아이가. 그거 보고 그라는 거가?
아부지는 더 이상 내 이야기를 믿지도, 듣지도 않으셨다.
“진짜로 봤는데...”
그 날 시커먼 바다에서 내가 봤던 건 분명히 커다란 고래였다. 나를 향해 다가왔고, 내 옆에서 따뜻하게 있어줬다. 아부지도, 엄마도 믿지 않아서 더 이상 말하기도 싫었다.
“할매, 진짜 고래봤심더~”
“맞나? 우리 똥강아지가 고래봤나? 아이고~ 잘했네~ 고래가 뭐라 하드노?”
“할매~ 고래가 어떻게 말을 해요? 아이참! 할매도 내 말 안 믿고!”
“아이다. 믿는다. 우리 똥강아지가 봤으면 봤는기제~ 너거 할배가 저 바다에서 니보라고 보내줬는갑다. ”
“치.”
삐죽거리며 할매한테 등을 돌리고 누워버렸다. 문득 배치기 하다가 이렇게 됐으니 내일 나가면 용수가 얼마나 놀려댈지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도 선장실까지 올라갔는데...’
홀쭉한 배를 살살 만져봤다. 크게 아픈 것 같지도 않고 다친 곳도 없다. 그래도 선장실까지 올라갔던 게 기분 좋아서 혼자 비실비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