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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첫 상금 10만원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벌었다. 돈을 벌었다는 표현은 좀 웃기지만 처음으로 상금이라는 것을 받았다. 당시 10만 원이면 엄청 큰돈이었다. 엄마는 이 기쁨을 함께하자며 학교에도 먹을 걸 돌리고 가족들끼리 맛있는 걸 먹으며 자축하면서 받은 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쓰셨다고 한다. 그 글은 한국은행에 다녀온 후 쓴 기행문으로 학교 신문에도 실렸다.    


  「한국은행을 견학 하기 위해 차를 타고 내린 곳은 바로 한국은행 정문 앞이었다. 맨 처음 한국은행의 크기로 봐서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한국은행에서 하는 일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4, 5, 6학년 일행은 한국은행에서 근무하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며 강당으로 들어갔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으로 돈의 가치를 안정시키고 은행을 건전하게 경영하도록 하고 금융 거래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1950년 6월 12일 창립되었다고 아저씨께서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지폐와 동정은 한국은행에서만 발행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실제로 돈을 만드는 일은 한국은행의 주문에 따라 조폐공사에서 맡고 있다.   

  한국은행에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돈의 양을 조절하여 돈의 가치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한국은행은 은행을 상대로 예금을 받거나 돈을 빌려주고 있기 때문에 “은행의 은행”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일종의 하나로서 정부의 돈을 받고 내주는 일과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일도 하고 있다고 하셨다. 또 외국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관리하고 있다는 말씀을 들은 후 금고를 견학하기로 했다. 우리 차례가 되자 왠지 조금 흥분되었다. 금고 안은 정말 놀랄 정도의 동전과 지폐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듯 높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아이들도 모두 감탄했다. 그리고 또 하나 지폐 검사하는 기계가 너무나 신기했다. 돈을 넣으니 이상한 무늬가 나오면서 위조지폐와 진짜 지폐를 구별해 내고 돈을 많이 넣으니까 몇 장인지 앞 모니터에 나타내는 기계 등.... 이런 것들에 우리는 연방 입을 벌리고 있어야 했다. 

  우리 일행은 사진을 한 장 찍고 가벼운 발걸음을 차로 옮겼다. 은행에 대해 몰랐던 것도 알게 되었고, 한국은행에서도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어 기뻤다.」    


  엄마의 철저한 자료 관리 덕분에 30년이 넘도록 남아있던 학교 신문 속 내 글이다. 몇 년째 글짓기대회나 독후감 대회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아이들의 글을 많이 접한다. 30년 전 나의 글을 보니 조금 기특하다. 기행문에 꼭 들어가야 할 여정, 견문, 감상이 골고루 들어가서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은행을 견학하기 위해 차를 타고 한국은행 정문 앞에 내렸다.’,‘~하기 위하여 강당으로 갔다.’라는 식의 여정도 나타내고, 한국은행에서 하는 일을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께 자세히 듣고 그것들을 기록하였고, 직접 금고로 가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쌓여있는 지폐들을 보고, 새로운 기계들을 보고 신기했다는 내용은 견문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에서는 감상이 살짝 아쉽기는 하나, 금고를 보기 전 흥분되는 감정을 표현한 것과 한국은행에서 한 일을 알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는 표현 등은 부끄럽지만 상금 10만 원을 받을 만한 글이 아닐까? 내가 쓴 글이지만 30년 전 꼬맹이일 때의 내 글솜씨가 좀 웃기고 재미있다. 당시에는 얼마나 자랑스러워했을지 생각하니 더욱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마 한국은행 기행문을 적고 상금을 받은 후, 나는 글을 쓴다는 것에 더 자신감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자신감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自信을 믿는 것이다. 내 능력이나 나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는 것, 글쓰기는 이것부터 시작이다.     


  가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왜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지? 싶을 때도 있고 또 가끔씩은 어떻게 내가 이런 표현을 하고, 이런 글을 썼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마도 내 안에 들어있는,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내면의 소리가 글을 쓰면서 불쑥불쑥 튀어나와서가 아닐까? 그리고 그동안은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혹은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나의 이야기들이 글이라는 옷을 입으니 알록달록한 색을 내게 된 것은 아닐지.    

  내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내가 쓰는 글이 가치 있다는 마음, 내가 쓰는 글을 통해 내 생각과 마음이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 이것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이런 마음과 이런 믿음으로 글을 꾸준히 써 온 것인지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은 ‘진정성’이 있는 글의 힘이다.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던 것들 하나하나가 자신감이 되기도 하고, 꿈이 되기도 했다.

우리네 인생은 오롯이 자신에 의해 한 줄 한 줄 채워가는 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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