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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11살, 첫 글을 '짓다'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6시면 문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보곤 하셨다. 그러다가 한 번씩 소리를 꽥 지르며 사람들을 겁주기도 하셨는데, 멀리 나가진 못하셨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셨기 때문이다. 늘 무서운 얼굴로 아침부터 문밖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동네 아이들은 그 집 앞을 지나가지 않으려고 뱅뱅 돌아 학교에 갔다.     

  ‘도대체 저 할아버지는 왜 저러시지? 무섭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사람들 겁주고 소리치는 할아버지가 우리 동네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통장 아줌마가 할아버지집에 떡을 들고 들어가는 걸 봤다. 그 집에 누가 들어가는 건 처음 봐서 신기했다. 저렇게 무서운 할아버지집에 가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한테 이야길 했더니 그 할아버지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셨다.    

  “할아버지는 무서운 분이 아니고, 예전에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고마운 분이야. ”  

  “그런데 왜 자꾸 사람들한테 소리 지르고 겁주고 무섭게 해요?”    

  “할아버지께서 전쟁이 일어나고 열심히 나라를 지키는 중에 한쪽 다리도 잃으시고, 사랑하는 아내도 잃고, 어린 자식도 잃으셨대. 그래서 마음에 병을 얻어서 그렇게 할아버지 스스로 그렇게 해야 집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야.”    

  “아…….”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돌아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피하기 보다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내가 11살이 되던 해였다. 지금은 들으면 소스라칠 ‘반공 글짓기’라는 이름으로 내가 처음 글짓기에 도전했던 글이다. 정확하게 기억을 하는 것은 아니나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의 글짓기 실력치고는 상당히 화제를 부를 만한 글짓기 실력이었다. (라고 엄마가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상을 받았다. 우수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 해 본 글짓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거짓말을 적는 게 글짓기라는 말인가? 어떻게 거짓말을 적었는데 상을 주지?’    

  초등학생이고, 기껏 4학년이니 픽션(fiction)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급한 마음에 거짓말처럼 지어낸 이야기에 상을 주니, 내 머릿속에 ‘글짓기=거짓말’이라는 공식이 강하게 새겨졌고 그다지 긍정적인지 않은 느낌으로 남아버렸다. 아마 그때부터 난 더는 픽션을 가미한 글은 거의 적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적지 못했다. 나를 속이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그다음부터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대부분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경험담이 글의 소재가 되었다.    

  사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나는‘국민학교’를 다녔지만) 수많은 대회가 있었다. 작게는 일기 쓰기(대회라기 보다는 일기를 평소에 꾸준히 쓰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대회)부터 춘계백일장, 식목일 백일장,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무슨 날이 붙는 때면 꼭 대회가 열렸다.  그런 대회에 나는 대부분 참여했던 것 같다. (선생님의 강요도 물론 없었던 건 아니다.) 사실 상을 받는 게 좋았다. 아마 초등학교 6년 동안 받은 상이 50개에서 60개는 될 것이다. (찾아보니 그만큼은 되지 않았지만 한 학년에 기본적으로 5~6개씩은 받은 우등생이었다.) 내가 상을 받고 싶었던 목적은 ‘부모님께 칭찬받고 사랑받고 싶어서’가 전부였다. 아마 칭찬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무척이나 강한 아이였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내가 상을 자주 받아 가니 부모님은 감흥이 없어진 듯했다. 잘했다는 칭찬보다는 당연하다는 듯한 말씀이 어린 마음에 속상했다. 난 최선을 다한 건데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엄마는 글을 잘 쓰는 나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고 계셨다. 아직도 우리 집 구석에는 내 상장이 들어가 있는 액자가 여럿 있다. 그 흔적들을 보노라면 엄마의 기분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되기 전에 엄마의 마음을 절대 알 수 없고, 내가 그 상황이 되기 전에는 100% 공감이라는 건 힘든 일이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이 된 나의 아들들 영준이, 민찬이가 무엇이라도 잘해서 칭찬받으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런 데다가 상이라도 받아오면 덩실덩실 춤이 나올 정도로 기쁘다. 마치 내 아이는 이것을 위해 태어난 사람은 아닐까, 이런 재능을 그냥 썩혀도 되나. 민찬이가 유치원 때 현대호랑이 축구단 그림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을 때도, 태화강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을 때도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는지 모른다.     

   “아직 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 녀석이, 미술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요 녀석이 상을 받아요~”    

  나도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엄마에게 여전히 자랑스러운 딸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전히 글을 쓰며 사는 딸내미가 상장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둘 때처럼 좋으실 거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꼭 누구를 위함은 아니지만, 나의 행위가 누군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나의 행복함은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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