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19일, 내 생일이라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울산에 있는 당시 유일한 4년제 대학교 국어국문학부에 특차로 합격했다. 부모님의 말씀처럼 난 울산을 벗어나지 않았고 특차로 합격하면서 더는 정시에도 도전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고등학교 다니던 3년 동안 꿈꾸었던 국어 선생님이 바로 될 수는 없는 학과였지만 국어국문학부 안에 국어국문학과랑 문예창작학과가 있어서 그나마 마음에 들었다. 학부생들은 1년을 공부를 있다가 2학년 때 진로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 이번 기회에 글을 쓰자. 문예창작학과로 가서 멋지게 글을 쓰는 방법도 배우자!’
이런 결심으로 학부 1학년 때는 전공과목보다는 문예창작학과 관련 과목들로 시간표를 채웠다. ‘시의 이해’, ‘시창작론’,‘희곡의 이해’, ‘소설의 이해’, ‘소설창작론’, ‘아동문학론’등 글을 쓸 수 있는 모든 수업을 섭렵했다. 특히 나를 위축되게 만드는 시詩 과목은 전부 수강했다. 특히 시 전공의 멋진 시인 교수님을 만나 많은 걸 배웠다.
일반인과 대학생들이 참가하는‘하동 토지문학제’ 같은 다양한 문학제에도 참가하며 경험을 쌓았다. 역시 전공을 하면서 보니 글을 쓰는 내 실력이 참 모자라는구나 하는 것도 느꼈던 것 같다.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시의 이해’나 ‘시창작론’은 다행히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A+를 받았으나 ‘희곡의 이해’ 수업은 희곡을 한 편 적어야 했는데, 머리 짜내어 나름 인물을 설정하고 갈등 상황을 만들고 클라이맥스까지 적어냈으나
“무슨 사랑과 전쟁을 찍냐?”
이런 교수님의 혹평에 내 자신감은 날개를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소설의 이해’ 시간에는 다행히 소설을 적지는 않아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아동문학론’은 아주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아동문학이라고 해서 동화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는 큰 깨달음과 함께.
정말 글을 쓰는 일은 내 천직일 것이라 여기고 문예창작학과를 택하려던 내게 창작 수업의 참패는 많은 것을 고민하게 했다. 내가 너무 잘난 척했구나 하는 반성과 문예창작학과에 가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까지. 하지만 이 고민은 그리 오래 할 수도 없었다. 2학년이 되어 과를 선택하는데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한 사람이 나와 이미 등단을 한 동하 오빠뿐이었다. 동하 오빠는 시로 등단을 한 어엿한 시인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2살이 많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다른 과에서 국어국문학부로 전과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든 단 두 명만으로 문예창작학과를 운영하는 데 무리가 있으니 결국 문예창작학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래도 창작 수업은 꾸준히 개설할 것이라는 학교의 달콤한 꼬드김에 우리 둘도 결국 국어국문학과로 결정을 했다. 사실 우기면 문예창작학과로 졸업할 수도 있었지만, 현실과 타협했다.
국어국문학과로 2학년을 시작한 우리는 여느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처럼 전공과목에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처음에 학교에서 약속했던 것과는 달리 점점 창작 수업은 사라졌다.
국어국문학과에는 여러 학회가 있었다. 문예 창작을 하는‘창작학회’, 현대 작가 사상을 연구라는‘비나리’, 고전문학을 연구하는‘고전학회’ 이렇게 세 학회와 민중가요를 부르는 소모임인 ‘뗏고함’, 봉사소모임인 ‘한벗’ 등 동아리와 소모임이 여럿 있었다. 학생 대부분이 하나씩은 들어갔고 나는 나름대로 문예창작학과를 지망했던 학생으로서 창작학회가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학회 활동을 시작했으나 창작학회에서도 역시나 매년 5월 시화전을 열었고, 시詩에 이미 한 번 겁을 먹었던 나는 창작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창작학회가 있었기에 많은 선후배와 가까워질 수 있었고 현재까지도 하늘 같은 기수의 선배들과도 연락하고 살고 있으니 참 많은 걸 얻었다.
사람들은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국어국문학과라고 하면 ‘한자를 많이 알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의류학과를 다닌다고 하면 ‘패션 감각이 특출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게임학과라고 하면 ‘프로게이머처럼 게임을 잘 하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국어국문학과에서는 기초생활 한자만 다룰 뿐 굳이 한자를 죽어라 쓰지 않는다. 오히려 ‘국문학개론’이나 ‘고전문학강독’과 같은 수업시간에는 한자가 반인 수업을 들을 때면 다들 한자 밑에 음을 달기 바쁘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의류학과는 옷을 만드는 과가 아니라 의衣에 관한 모든 기초를 배우는 곳이라고 한다. 패션은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게임학과 역시 게임을 하는 과가 아니라 게임 개발자를 양성하는 곳이다. 프로그래밍을 중심으로 하는 게임공학과 그래픽을 중심으로 하는 게임기술 디자인이나 게임 그래픽, 게임을 기획하는 게임기획과 등 전혀 다른 것을 배우는 곳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학이라는 곳을 정할 때, 혹은 대학에서 사회로 진로를 정할 때 관련 학과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굳이 관련 학과를 나와야만 그것을 잘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 문예창작학과가 사라지고 국어국문학과로 가서 엄청 실망했었다. 이제 글을 쓰는 일은 포기해야 하는 건가 하고. 하지만 그것은 나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결코 학과 선택이 전부가 아니었다.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작가님들은 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사람은 몇 명 보지 못했다. 오히려 작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과에서 공부하고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한 후, 방송작가가 된 사례가 70~80%는 되는 것 같다.
글을 쓰고 싶다면, 혹은 작가가 되고 싶다면 지금 무슨 공부를 하든 상관없다. 다른 전공을 한 사람이면 더 이로운 부분이 많을 것이다. 남들은 모르는 타전공 분야에 대한 글은 누구보다 잘 적을 테니까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이랑 관계없는 학과라 학업을 중단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꼭 졸업은 하라고 말하고 싶다.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 어떤 것에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