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라는 곳에 가서 수업을 받는 건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다. 제일 신나는 것은 발표하기!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선생님 앞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지, 친구들 앞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발표를 하기 위해 한쪽 팔만 든 게 아니라 두 팔을 다 들고 벌떡 일어나 발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뿜어낸 것만은 확실하다. 담임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아주 열정적인’,‘발표력이 왕성한’이라고 통지표에 적어 주시곤 했다.
발표하는 습관은 중학교에 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인지 점점 뒤로 빼기 일쑤였다. 특히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중학교 윤리 시간이면 나는 쉬는 시간부터 설렜다. 아직도 중학교 동창들은 내가 그 여드름 가득했던 총각 윤리 선생님을 좋아해서 윤리 시간이 좋았던 거라고 하지만, 난 윤리 선생님의 수업방식이 좋아서 선생님을 좋아했던 거였다. 결론은 같지만.
윤리 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꼭 생각하는 문제를 던지셨다. 정확한 질문들이 생각나진 않으나 난 어떤 질문을, 그것도 교과과정 중의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뻔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윤리 선생님도 나를 예뻐하셨고, 어린 여중생들 사이에 나랑 윤리 선생님의 달달한 스토리가 마구 만들어지곤 했다. 우리의 소통을 그렇게 받아들이다니.
나는 소통하는 것이 좋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한다. 사람마다 제각기 말로 소통하는 게 편한 사람이 있고, 글로 쓰는 게 편한 사람이 있다. 아마도 말로 소통하는 법을 먼저 터득한 사람들은 나의 가치를 높여주는 화술의 힘도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특별한 격식을 차리지는 않더라도 절대로 넘어서지 않는 일정한 경계가 있거나 듣고 싶지 않은 말이라도 기꺼이 들어줄 줄도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한 번에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말하는 행위를 통해 자기 생각을 짧은 시간에 전달해서 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의 전제는 성공적으로 말하기가 잘 되었을 때를 의미한다. 반대로 실패를 했을 때는 많은 사람을 실망하게 할 수도 있고 타인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소통해야 할 순간이 있다.
성공적이고 훌륭한 말하기를 위해서는 화려한 언변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내 말에 충분히 귀 기울여주고 또 내 말을 바르게 이해하고, 기억에 남도록 하는 것에 포인트가 있다. 절대로 일방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비단 말이 아닐지라도 상대와 서로 소통하며 많은 정보를 교환하게 된다.
글쓰기 역시 글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하게 한다. 그것이 소설이 됐건, 시가 됐건, 수필이 됐건, 혹은 연설문이 됐건 그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해서 타인과 공감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힘이다.
하지만 글 역시 재미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기도, 글쓰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말하기와 글쓰기 모든 것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말재주도 있고, 글재주도 있어서 좋겠다”
소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말재주도, 글재주도 만들어 낸 것이다. 노력하고 연습한 결과다. 사람이 다 같지는 않기에 각자 노력한다고 해서 다 글을 잘 쓸 수 없고, 모두가 화려한 언변을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능이라는 것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노력하면 그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글쓰기에서 그런 재능이 필요한 장르와 조금 덜 필요한 장르가 있다. 문학적인 글과 공학적인 글이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은 재능의 영향이 크다. 무언가를 지어내는 상상력과 남들과는 다른 방식의 감수성이 존재할 때,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공학적 글쓰기는 비판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적 재능이 아니라도 충분히 글을 잘 쓸 수 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시詩에 겁을 먹었듯이 특별한 감성과 언어 감각으로 풀어내는 문학적인 글은 보통 내공으로는 접근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글을 쓰거나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담아 표현하고 싶다면 굳이 문학적 글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사람들은 구성작가라고 하면 엄청난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아이템을 찾아내고, 누군가를 섭외하고, 촬영 계획표를 짜고 흐름에 적당한 구성안을 쓰고, 촬영 후 편집본을 보며 내레이션 대본을 쓰고, 자막을 뽑아내는 일은 어쩌면 매우 기계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서 작가의 감수성이 한 숟가락 더해진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만큼 좋은 기술이 어디 있을까?
얼마 전 책을 쓰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려 차곡차곡 모아둔 상장들을 꺼냈다. 별의별 대회가 다 있었구나, 난 거길 또 다 나가서 상을 받았구나, 생각하니 웃겼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독후감 대회나 글짓기, 백일장에서 받은 상들은 대부분 장려상이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 1, 2학년 때는 우수상, 3학년이 되어서야 교내글짓기에서 장원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대회가 확 줄어 비교할 순 없지만, 교육감상까지 받은 걸 보면 점점 글쓰기 실력이 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증거였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처음 나간 경남은행 여성백일장에서 장원을 거머쥐었다.
나를 표현하는 능력은 이렇듯 점차 발전한다. 그 비결이라고 하는 것은 딱히 비법이나 왕도가 있겠는가? 그저 많이 읽고, 많이 쓰고……. 하지만 나를 얼마나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의 차이로 결과는 달라진다. 말재주, 글재주가 없다고 서러워 말고 솔직해지자. 나를 위해서, 나의 글쓰기 실력 향상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