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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차곡차곡 쌓인 일기장

 나는 깨나 오랫동안 일기를 썼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일기를 쓰는 것이 숙제여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기는‘속풀이장’이 되어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말에 복종하듯이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애쓰는, 나의 욕구와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다.     


  아마 많은 사람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아팠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자존감은 점점 낮아졌다. 답답한데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난 분명 착한 아이여야 하는데 나의 속마음을 들키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기장에 속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날 괴롭힌 날은 동생에 대해서 마구 적어 내려갔다. 화가 나도 적고, 억울해도 적고, 기분 좋았던 일, 재미있었던 일, 슬펐던 일 등 매일의 내 일상을 적었다. 정말 솔직했다.     

  이렇게 솔직할 수 있었던 것은 순진하게 선생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비밀보장이 당연히 될 것으로 생각하고 적어 내려간 나의 살생부(?)를 결국 엄마에게 말해버리셨다. 그리고 그 날 엄마한테 엄청 혼났던 기억이 난다. 혼나면서도 생각했다.    


  ‘아니, 일기장은 내 것인데 왜 내 일기장을 보고 혼내는 거야?’    


  만약 그때, 선생님과 엄마가 먼저 내 마음을 읽어주고 토닥여주고 충분히 쓰다듬어준 후에 행동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은 이것을 ‘감정코칭’이라고 부른다. 내가 일기장에 쓴 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감정을 읽어주셨더라면 참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와 억눌러야 할 때가 있다. 커서야 안 사실이지만 감정을 통제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분노 등의 격한 감정이나 부정적인 감정은 글로 쓰는 것이 효과적인 감정 발산 방법이라고 한다.     

  선생님과 엄마의 합동작전으로 나는 일기장에서조차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는 정말 누구도 보지 않는 나만의 일기장에 나는 계속 글을 써나갔다. 나의 감정, 나의 상태, 나의 비밀... 모든 것을. 지금 보면야 비밀이랄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크게만 느껴지던 때였다. 졸업했던 초등학교를 어른이 되어 다시 가보니 책상도, 의자도 너무 작아서 여기에 어떻게 앉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그때의 나에게는 아주 크고 무거운 것들이었다.    


  생각을 글로 옮기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얼마나 걸어왔는지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다. 날마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기록하는 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역사이자 목표를 달성해 가는 과정의 기록인 것이다. 또 기록에 비추어 현재 상황을 정리하고 결론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일기를 썼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조용한 야간자율학습시간이나 독서실에 가서도 일기를 썼다. 공부하려면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데 일기를 쓸 때면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씩 글로 적었다. 그렇게 스스로 적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내용을 되새겼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일기장에서 나의 가치와 신념이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책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문장을 발견하면 일기장에 필사하기도 했다. 그 구절이 다시 나에게로 와 새로운 옷을 입는 느낌이었다. 또 가끔은 책의 내용을 간추려 적었다. 읽은 책이 제목만 기억나고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 독서록과 같은 개념으로 일기장을 활용했다. 그렇게 하던 습관이 텍스트를 요약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발췌하는 연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꾸준히 훈련하는 것만이 답이다. 머리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혀야 조금이라도 실력이 늘 수 있다.     


  ‘일기장’이라는 이름의 이 노트에는 엄청난 글들이 담겨있었다. 그 글을 하나하나 쓰는 것으로 글을 쓰는 훈련이 되었고, 생각이 정리되었다. 원하는 대로 글을 술술 쓸 수 있는 능력이 아직까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제가 정해지거나 글감이 정해지면 머릿속에서 생각의 장치들이 저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적합한 나의 이야기를 툭 던져준다. ‘나의 이야기’라는 것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도 하고, 일기장에 한 번쯤은 써 내려갔던 글일 수도 있다.    


  고3이 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친구가 자기소개서나 이력서 때문에 찾아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는 자기 인생의 요약본이다. 자기의 인생은 자기만이 아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서 요약해야 할지를 몰라서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고 결국 자기 이야기가 아닌 대학 입학 전형에 적합한 ‘자신’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가공된 인물은 대학 4년을 다니면서 어떻게 변할까? 정말 자기소개서에 썼던 것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자기소개서가 겁난다면 일기를 써라. 나를 정리하고, 나를 알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일기장에 쓰여 있는 수많은 웃음과 눈물을 가진 이가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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