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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꽉꽉 채워진 다이어리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다이어리를 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새해 다이어리를 사면 올해는 새로운 마음으로 잘해보자! 는 의미로 새해 다짐, 계획, 목표 등을 적어나간다. 나도 그랬다. 특히 우리 때도 (1990년대를 말한다) 여고생들 사이에 한창 유행하던 것이 요즘은‘다꾸’라 불리는 다이어리 꾸미기였다. 능숙한 솜씨와 멋진 감각으로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꾸러’들. 요즘은 다이어리 꾸미기가 취미인 사람들을 ‘다꾸러’라고 부르고, 이들이 대체로 문구류를 굉장히 좋아하는 ‘문구 덕후’를 뜻하는 ‘문덕’을 자처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다꾸러’이자 ‘문덕’이었다.     


  자그마한 다이어리 스케줄러에는 오늘은 누구랑 무엇을 먹었는지, 오늘은 지각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 숙제는 뭐가 있었는지까지도 빼곡하게 적었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스티커도 붙이고 뭔가 적을 칸이 부족하면 포스트잇까지 붙여가며 메모를 했다. 무엇인가 생각만 나도 바로 적었다. 그때는 그저 빽빽하게 적혀있는 다이어리를 보는 게 좋았다. 뭔가 열심히 한 것 같고, 한 가지라도 끝을 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대학교에 가서도,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다이어리를 썼다. 촬영 스케줄, 리포터가 촬영 가능한 날짜, 방송날짜, 섭외한 분 연락처 등등. 학교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이지만 이렇게 메모를 하는 습관은 내 일에 큰 장점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빈 종이와 몽당연필 한 자루가 최고의 기억력보다 낫다고 한다고 한 마이클 윈딘스키 박사의 말처럼 나는 짧은 미팅을 할 때도, 잠시 어딘가로 외출을 할 때도 작은 다이어리와 펜은 필수품이다.    


  물론 이제는 그 다이어리와 펜을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와 스케줄러라는 애플리케이션이 대신하고 있다.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 보자. 우리가 글을 쓰다 보면 이 단어가 여기에 쓰이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충 전체적인 맥락이나 문맥에 맞으니까 그냥 넘어가야지, 혹은 귀찮으니까 넘기자는 생각은 하지 말자. 정확한 의미를 알아야 내가 앞으로 쓰는 글에 잘 활용할 수 있고 그래야만 공감받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모르는 단어나 헷갈리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사전을 찾아본다. 그리고 메모를 한다. 그 단어는 적어도 내 기억 속에 두어 번은 더 남을 것이고, 그것은 언젠가 활용된다. 다이어리든, 일반 수첩이든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예쁜 다이어리에 예쁜 단어들을 채워 넣는 건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메모하면서 글쓰기’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글쓰기 방법이다. 앞서 일기장에 적었던 것처럼 독서메모도 해보고,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 구절들도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해보자. 혹은 내 일상을 시간순으로 메모해서 다이어리를 가득 채워보는 것이다.     


  그리고 예쁜 다이어리에는 나만의 단어를 찾는 기록도 해보길 추천한다. 원래는 자기소개서나 면접 준비를 앞두고 주로 쓰는 방법인데, 나를 나타내는 단어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나의 장점, 나의 단점, 내가 가장 행복했던 날, 내 생애 가장 기억나는 여행, 친구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마음껏 채워 넣고 그 단어들을 이용해서 짧은 글을 써본다. 그리고 완성된 짧은 글을 모아 긴 글을 만들어본다. 그것이 짧은 단어이든, 하나의 문장이든 상관없다. 그것이 글이 된다.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글이다.    


  또 하나는 사진에 메모하고 그 이미지를 이용해 글을 쓰기를 즐긴다. 처음에는 글은 써야 하는데 어떤 느낌이나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아 곤혹스러운 적이 있었다. 그때 관련된 사진을 보면서 사진 속에 나타나는 여러 느낌을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물론 제일 좋은 방법은 그곳에 가보거나, 그 사람을 만나거나, 그것을 직접 해보는 경험이 1순위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사진을 보고 메모해보자. 그리고 느낌을 적어보고, 그것들을 이어서 글을 써보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우리를 방해하는 것들은 참 많다. 이왕이면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은 한 글자 쓰기조차 어렵게 만들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보면 어떤 평가를 할까 걱정되기도 할 것이다.     


  내가 가장 많이 경험하는 글쓰기의 방해꾼은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한 번에 무언가 다 써버리고 싶은 마음이 조급함이라는 녀석을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급하게 먹으면 체하듯이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 없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그렇게 써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언제나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다른 사람의 글과 비교하지 말자. 세상에 완벽한 글이 어디 있겠는가? 절대로 그런 글은 없다. 누군가에게 완벽해 보이는, 또 다른 누군가에는 어설퍼 보이는 글이 있을 뿐. 글은 주관적이다. 절대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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