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라글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선생각 Oct 08. 2021

경험 풀어내기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으면 이제 그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문화인류학에서 전파(diffusion)는 한 사회의 문화요소들이 다른 사회로 전해져서 그 사회의 문화과정에 정착되는 현상을 말한다고 한다.     


  물론 내가 이렇게 거창한 문화 전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명감으로 나는 강의를 한다. 꼭 특정 문화요소의 전파를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문화요소들과 나의 경험이 상호작용을 통해 어떤 방향의 문화 변동이라도 그 중심에서 중요한 자극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자유학기제가 생기면서 직업 멘토 특강이 계속 들어왔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이런 사명감에 불을 붙었다. 사람들은 ‘작가’라고 하면 단순히 골방에 틀어박혀서는 어지럽게 쌓인 책들 속에서 부스스한 상태로 골뱅이 안경을 쓰고 일을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방송국 작가실에 와보면 그런 상상의 와장창 깨진다. 그렇게 책에 둘러싸인 모습도 아닌데다가 누가 MC고 누가 리포터고 누가 작가인지 모를 정도로 다들 매력적인 모습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일 수 있으나)    


  그리고 작가는 글을 쓰는 과를 나와야만 되는 건지, 글을 얼마나 잘 써야 하는 건지 물어보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방송작가는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알려주고, 나는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방송작가로서 더 많은 것들을 표현해내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학교 다닐 때 사실 내신을 포기하고 책을 읽었던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풀어내지는 않지만, 학생들에게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라고 말한다.     

  “너희들의 꿈은 뭐니?”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다거나 모른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당연히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특히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더더욱 그러리라 생각한다.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는 수십 차례 꿈이 바뀌었다가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방송작가를 시작하면서는 ‘책을 내고 싶다’라는 꿈이 생겼었다. 그리고 소설 ‘환상의 섬’과 스토리텔링 가이드북 ‘걷다가, 쉬다가’를 내고 나서는 책을 두 권이나 냈지만, 진짜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꿈에 대한 생각이 계속 바뀌면서 진짜 꿈을 찾아가는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꿈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라는 것일 뿐.  


  작가의 삶을 이야기하면 당연히 내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난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을 한다.     


  “무엇을 하든지 ‘나답게’ 살아가야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봐야 한다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또 그로 인해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가게 된다면 진짜 꿈이 보인다. 진짜 ‘나’를 알게 되면 나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몇 년의 시간을 벌게 될 것이라고, 진짜 훌륭하다고 말해준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들과 <말하기와 글쓰기>, <자신을 표현하는 말하기>, <스토리텔링> 등의 강의로 만난다. 벌써 10년이 다 됐다.    


  문수실버복지관에서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세대소통 프로그램 – 너에게 들려줄 이야기>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나의 손주나 자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글을 써서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첫해에는 2번 정도의 간단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어르신들께 글의 주제를 정해드리거나, 전체적인 구성을 하고 어르신들께서 글을 써서 보내주시면 첨삭을 해서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단순히 쓴 글을 뜯어고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이듬해 복지관에서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세대소통 프로그램 – 너에게 들려줄 이야기 2>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이번에는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는 노하우 등을 12회에 걸쳐 강의하기로 했다. 첫 강의를 간 날, 15명 정도 되는 어르신들께서 “우리 선생님”이라고 좋아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뛰었고, 제일 연세가 많으셨던 92세 어르신의 글쓰기 솜씨에 정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그렇게 12회차 동안 어르신들은 결석하는 분도 거의 안 계셨고 매번 글을 써오는 숙제를 내드렸는데도 정말 잘 해오셨다. 어르신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 세월에 같이 웃고 또 같이 울면서 얼마나 정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때 나이가 고작 39살이었다. 아흔이 넘는 어르신들 앞에서 아직은 보잘 것 없는 나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어르신들은 그런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우리는 서로를 알았고, 느꼈고, 진짜 ‘우리’를 만났다. 나이는 소용없었다. 나중에는 어르신들께“선생님은 엄마 같다.”는 말도 들었다. 손주뻘 되는 나에게 그런 느낌을 받으신 건 나에게 얼마나 큰 칭찬인가?    


 그렇게 어르신들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으로 <스토리텔링을 통한 세대소통 프로그램 – 너에게 들려줄 이야기 2> 책도 무리 없이 나와서 출판기념회도 가졌다. 그 이후로도 어르신들은 연락이 꾸준히 오고, 떡도 보내주시고, 언제나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신다.     


  다양한 경험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꽉꽉 채워진 다이어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