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면 생방송 준비는 전쟁이다. 7시 30분이 방송시간이면 그 전에 모든 셋팅을 마쳐야 하고 데일리 프로그램이라 생방송 팀들은 하루하루 전쟁 같은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가끔은 밤을 새우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일찍 준비가 끝난 날은 최대한 집에 가서 잠을 일찍 청해야 다음 날 생방송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에 3~4일은 방송국에서 밤을 새우면서 숙직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 생방송을 했다.
막내 작가에서 벗어나 이제 통대본도 쓰게 되고 화요일 생방송을 온전히 맡게 되었을 때였다. 아직 속도가 붙지 않았던 나는 밤 10시쯤 다음 날 방송 아이템 편집본이 나오는 날이면 밤을 새워 내레이션 대본을 적어야 했다. 사실 매일 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항상 아이템은 부족하고 잡았던 아이템이 엎어지는 날이면 어떻게든 새로운 아이템을 잡아서 방송 분량을 채워야 했다. 그러니 당일 촬영에 당일 편집은 뻔한 일인 경우도 많았다. 방송 아이템이 쉽게 잡히고 촬영도 순조로웠고 편집본도 일찍 나와서 모든 준비가 일찍 끝난 날은 오히려 뭔가 불안했다. 그때가 밤 9~10시 정도였다.
생방송을 위한 모든 셋팅을 했다. 막내 작가가 주로 해주는 출연자와 스텝들 대본 정리까지도 일일이 포스트잇을 붙여 정리하고 다시 작가실을 돌아보고 집으로 갔다. 다음 날 개운하게 푹 자고 일찍 일어나서 방송이 문제없이 잘 끝난다면 정말 완벽한 상태였다.
“띠리링~”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려서 ‘이 밤에 누구냐? 매너없이’ 라고 생각하며 눈도 뜨지 못한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야?”
이건 무슨 소리지? 자다 깨서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7시 5분.
생방송이 7시 20분 시작인데 난 지금 집에서 7시 5분에 눈을 뜬 거다. 그것도 FD 오라버니의 전화를 받고서. 죽었다. 큰일 났다. 어떻게 하지?
정말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를 빗었는지도 모르겠다. 벌떡 일어나 방송국으로 총알같이 갔다. 이미 방송 전 광고가 시작하고 모든 스텝은 방송 중이었다. 나는 마치 원래 방송국에 있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부조정실 안에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게 꿈일까? 현실인가? 나는 누구인지, 여기는 어딜까?’
생방송을 하는 내내 멍했다. 다들 뭘 하는 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생방송 전에 담당 작가가 해야 하는 자막 확인조차 하지 못한 채 시작한 생방송은 다행히 별 무리 없이 끝이 났다. 더 무서웠던 건 담당 PD가 아무런 욕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욕을 퍼부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알람을 맞춰두면 알람이 울리기 꼭 5분 전에 먼저 눈이 떠진다. 잠 잘 시간이 적다는 생각이 들면 아예 잠을 자지 않았다. 혹시나 못 일어나는 참사가 또 생길까봐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 후로 생방송 사고는 한 번도 없었다.
방송작가가 하는 일이 글만 쓰는 일은 아니다. 아이템을 잡고, 섭외하고, 자료수집을 한 후에 그것을 토대로 촬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성안을 쓰고, 촬영을 따라 나가서 현장의 모든 걸 함께 하고, 다시 편집본을 보고 내레이션 대본을 쓰고, 자막을 뽑고, 전체적으로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통대본까지 완성을 하고 정리 자막을 뽑아야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된다.
글만 잘 쓴다고 대본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성향이 맞아야 하고, 일에 흥미를 느껴야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멋진 작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작가들이 스쳐갔다. 아직도 여전히 작가를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이제 방송을 더는 하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 일을 하지 않는 작가들도 방송 일을 할 때의 즐거움과 그때의 성취감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들은 무엇보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의 문제를 떠나 ‘전문가’로서 자신의 모습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많은 아이템을 다루고 자료수집을 하고 나름의 공부를 하면서 작가들은 넓지만 얕은, 아니 깊지는 않은 지식으로 어떤 사람과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