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읽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 시에서 주최한 우륵문화제의 백일장에 나갔던 기억이 있다.
현장체험으로 방문한 유적지에서 펼쳐진 행사였는데, 의욕적이셨던 담임선생님께서 개인별 시나 수필을 한 편씩 꼭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 시기엔 부부 싸움을 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는 일상이 전부여서 딱히 쓸만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시간에 쫓겨 밤에 부부 싸움을 하다가 잠에서 깬 나를 뒤돌아보고 씩 웃으셨던 어머니의 표정에 대한 시를 써서 제출했다.
놀랍게도 내가 제출한 시는 백일장의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시장님 직인이 찍힌 상장과 함께 장학금을 받았다. 백일장이 끝난 이후에 당선작들을 모은 심사결과가 따로 발행되었는데, 내가 표현한 부모님의 싸움이 심사위원들이 봤을 때는 친구와의 다툼처럼 느껴졌나 보다. 결국 친구 간 우정에 대한 시로 해석된 셈이다. 백일장이 끝난 다음주 월요일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이전에 단상에 나가 상장을 한번 더 받았는데, 그때는 왜 시장님이 주신 상장을 교장 선생님이 한번 더 주시지?라는 생각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담임 선생님이 더 우쭐해하셨는데, 결국 한 술 더 떠서 자기가 잘 아는 논술 선생님께 지도를 더 받아야 한다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실 선생님과 학생&학부모의 관계는 갑과 을인 경우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 같은 선생님이 논술 학원에 다녀야 한다고 직접 집까지 전화를 하셨으니 없는 형편에 부모님께서 속이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상상이 잘 가질 않는다.
받은 장학금은 곧바로 학원으로 전달됐다. 학교가 끝난 뒤에 학원으로 가서 논술 선생님께 일대일로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기초를 닦으면 금방 전국 단위의 백일장에 당선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던 담임선생님과 다르게 논술 선생님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학원에 가면 선생님은 날마다 원고지에 글을 쓰는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또 글쓰기 주제를 주셨는데,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시는 단 한편도 나오지 못했다. 전국 대회에 빠른 시일 내에 입상하려면 그 나이에 맞는 어휘와 감성으로 동시를 써야 하는데, 늘 어둡고 헤어짐을 떠올려서 선생님께 자주 혼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한 달이 지나고 학원비를 요구하는 선생님께 인사도 없이 도망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나는 더 이상 시를 찾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형도 시집을 만나서, 하루를 시(詩)로 열고 닫고 있다.
차분하게 마음을 깨우고, 고요히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억지로 만들었다.
깊고 묵직한 시어가 묘한 여운을 남겼다.
삶의 흐름과 떠남이 얽히고, 내가 느끼는 감정에게 '넌 혼자가 아니야' 말해준다.
내가 읽은 시어에 대해 오랫동안 사색한다.
시집은 도대체 왜 읽는 걸까 그리고 시를 쓰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시를 읽지요? 한다면 내 잃어버린 언어를 돌보는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읽고 싶은 속도로, 감정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읽는다.
문장에 쉼표가 있는데 마침표가 없는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고,
단락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시리도록 슬픈 어휘를 골라 자신의 감정을 펼쳐놓는 시인들을 마음껏 질투하고, 양껏 존경한다.